기후변화, 국가 존립 위협 속
‘팬데믹 대응’ 위한 부양책이
석탄 등 오염산업 재부흥시켜
탈탄소 유럽서 ‘에너지 대란’
“기후 대응책, 정교하게 짜야”
習·푸틴, 유엔 기후총회 시큰둥
中, 온실가스 감축안 내놨지만
목표치 제시 안해 여전히 미흡
美·유럽선 원전 효용성 재조명
“가장 현실적 대안이 원자력발전”
기후변화가 개인의 생명뿐 아니라 국가의 존립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의 금융 시장 안정을 전담하기 위해 설립된 규제 기구인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는 지난 10월 21일 낸 보고서에서 기후 변화를 미국의 금융 안정성에 대한 ‘신흥 위협’으로 규정했다. FSOC는 “기후와 관련된 재정적 위험이 즉시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금융 규제 시스템에 기후 위기관리를 통합할 것을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토바이어스 아드리안 통화정책 및 자본시장 담당 국장도 CNN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가 틀림없이 금융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확언했다. 같은 날 미국의 17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은 기후 변화와 국가 안보 간 연관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특히 미 DNI 보고서에서 자연재해에 취약한 11개 국가 중 하나로 북한이 거론됐다는 것은 한국이 기후 변화의 정치·경제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재확인시켜준다. 높은 수출 의존도 탓에 전 세계 경제와 촘촘히 연결돼 있는 한국에서 ‘그린 스완’(실현 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나타내는 경제적 충격을 뜻하는 ‘블랙 스완’을 변형한 말로, 기후 변화에 의한 전방위적 경제 위기를 뜻함)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 개념을 처음 주창한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미 1년 6개월여 전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도 기후 변화처럼 위험 정도가 ‘충분히 계산되지 않은’ 그린 스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기후와 에너지, 두 위기 사이에 낀 지구 =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속으로 기후 문제를 담당했던 앨리스 힐은 폴리티코에 “세계는 ‘녹색 회복’의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팬데믹 대응을 목적으로 각국 정부가 시행했던 수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현재의 오염 산업을 재부흥시키는 데 사용되면서 ‘갈색 회복’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환경 전문 컨설팅 업체 비비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과 그 외 10개 경제 대국에서 팬데믹 관련 경기부양책으로 17조2000억 달러 규모의 대책이 발표됐는데, 이 중 28%에 불과한 4조8000억 달러만이 환경 문제와 연관돼 있었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각국에서 취해진 방역 정책 덕에 6% 넘게 감소했던 온실가스 배출량이 경제 회복과 동시에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 화석 연료 부문에 지급되는 보조금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선진국, 개도국 할 것 없이 허리케인이나 홍수, 산불 등 재해로 인한 피해가 컸던 올해야말로 세계 각국이 기후 변화 대응책에 있어 ‘대전환’을 이뤄내야 할 시점이라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탈탄소 흐름을 주도하던 유럽에서 시작된 전례 없는 ‘에너지 대란’은 기후 대응 정책이 한층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짜여야 할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시진핑 불참설에 COP26 기대감도 ‘시들’ = 10월 31일부터 2주 일정으로 개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쏠렸던 기대감이 다소 사그라든 데도 이 같은 최근의 상황 변화가 작용했다. 여기에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불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의미한 합의가 이뤄질지에 대한 회의감이 한층 커졌다.
시 주석은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로 구체화되는 이행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30년 탄소 배출량을 기준 시점 대비 얼마나 감축할 것인지를 의미하는 NDC는 각국의 탈탄소 의지를 상징하는 수치이자, ‘2050년 전 지구적 탄소 중립’이라는 파리협약의 목표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온실가스 4위 배출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 화상 참여 의사를 밝히자 알로크 샤르마 COP26 의장은 “5년 전 파리협약 때보다 결과 도출이 어려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각국의 지정학적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보다 정교하고 섬세한 접근법이 요구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유럽과 미국 등지에선 원자력 발전의 효용성을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원전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 산하 글로벌 에너지 센터도 10월 23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원자력은 탄소 배출량이 적고 신뢰의 역사를 가진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영국과 유럽연합(EU)에서 더 많은 원전이 가동됐다면 이 같은 극심한 가격 충격은 없었을 것”이라며 원자력을 현실적인 대안 에너지로 제시했다. 센터는 “에너지 안보 상황의 현실을 고려한 전환 정책의 조정이 없다면 전력 부족은 일상화될 것”이라면서 “더 많은 원전을 건설해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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