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북한 방문을 제안한 것은 반대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이래 코로나19 쇄국 상태인 북한 내부 사정마저 도외시한 채 오매불망 대북 대화 재개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로마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도 불안감을 자아낸다. 지난 9·21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에서의 화해와 협력의 출발점이라며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은 남북, 미북 대화 재가동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척을 견인할 ‘마중물’로서 톱다운 방식의 종전선언만 한 게 없다는 인식의 발로로 보인다.
그러나 낮은 실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6개월 남짓 남은 임기 내 성사를 위해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어떤 물밑 무리수를 시도할지 상상해 보니 아슬아슬함을 느끼며, 만에 하나 실현된다면 그 뒤에 벌어질 상황을 그려보니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도 긍정적 반응은 중국이 유일하다. 북한도 당초 시기상조이며 부적절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하도 스토킹하듯 절박하게 집착하니 이중잣대·적대정책 철회 등의 전제조건을 내세웠고, 나중에는 조건이 맞으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도 가능하다고 중독성 있는 미끼까지 던졌다.
북한의 궁극적 목적은 핵 보유 인정, 제재 해제, 주한미군 철수 및 동맹 해체다.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보고대로라면 북한이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한미 연합방위훈련 중단, 광물 수출 및 석유 수입 허용 등을 원한다는 것도 어이없다. 미국은 종전선언과 관련, 순서·시기 및 조건에 있어 한·미 간 입장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문 정부의 ‘선 종전선언, 후 비핵화 추진’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선 비핵화 진전, 후 종전선언’ 간의 커다란 차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며 미사일 도발과 핵시설 가동을 계속하는데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비핵화를 견인하긴커녕 오히려 핵 보유 영속화 및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명분을 제공하며 최근 경제난 속에 권력 강화를 꾀하는 김정은의 통치 기반에만 도움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한다고 했고,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선언으로 남북 간 불가침과 무력분쟁 종식을 선언했지만, 아직도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종전선언이 없어서가 아니라 북한 정권에 평화를 지키려는 근본 의지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북한은 86만t의 식량이 부족하며 올해 작황도 나빠 김정은도 살얼음을 걷는 심정이라고 직접 토로했다. 혹여, 북한의 종전선언 호응을 얻고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무리한 지원을 추진함으로써 동맹이 약화되고 제재 구조가 와해된다면 그 파국적 상황에 대한 책임을 이임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진단 말인가.
종전선언은 독자적으로 비핵화를 견인할 마중물이 될 수 없다. 북한의 비핵화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큰 틀 속에서 체결될 평화협정의 제1조에 규정될 것이 종전선언이다. 그리고 비핵화의 진전을 볼 때까지 제재를 위한 동맹 및 우방과의 현 공조 체제는 견고하게 유지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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