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장녀인 내게 무한한 믿음을 주셨던 어머니 덕분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점을 갖게 됐다. 학창 시절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검도와 같은 힘든 운동도 수준급으로 익혔던 나는 지난해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취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시기에 아는 이 한 명 없는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런던은 영국이 아니에요.” 이사를 온 작년 가을, 기차역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건넨 말이었다. 과연 그랬다.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과 스코틀랜드, 웨일스 같은 지역에서 온 이들이 지독하게 비싼 사글세와 낮은 건물 사이로 흐르는 싸늘한 공기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나도 도심 한복판에 방을 잡고 종일 회사 일에 매달렸다. 플랫메이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 지붕 아래 사는 여섯 명과는 몇 달이 지나도 데면데면했다. 창틀 사이로 쌀쌀한 비바람이 불어오는 밤이면 공기는 한층 무겁게 내려앉아 입을 다물었고, 그러잖아도 재택근무가 기본인 회사는 코로나19 탓에 잠정적으로 사무실 문을 닫았다. 나는 단기 출장을 온 영업사원처럼 이 도시를 멀찍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을 즈음 어머니는 이방인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주셨다. “사는 곳이 런던일 뿐 그저 집에 갇혀 일만 하고 있다”는 내게 어머니는 “런던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지금은 모를 수 있다. 시간을 정해 달려 보라”고 하셨다. 갑자기 용기가 생긴 나는 그날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고, 사람이 없는 아침은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기에 완벽한 시간이었다. 캐나다 거위와 혹고니 따위와 속도를 맞춰 서펜틴 호수를 느리게 뛰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역 라디오를 켜고 안개비가 내리든, 땡볕이 내리쬐든 공원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고, 1㎞조차 쉬어 가며 달려야 했던 러닝 초보는 어느새 7㎞도 한숨에 거뜬히 뛸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런던에 이사 온 지 1년, 230일 동안 1522㎞를 달렸다.
러닝 코스가 익숙해지자 오후에는 동네 탐방을 시작했다. 일만 하며 살기에 런던은 미적 요소가 지나치게 많은 도시다. 고즈넉한 성당과 현대적인 감각의 건축물이 어우러진 골목골목을 씩씩하게 혼자 걸어 다녔다. 발걸음이 닿는 만큼 도시는 따뜻하게 팔을 벌렸고, 직원들 얼굴을 알 만큼 자주 가는 도서관과 카페도 생겼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194시간의 조깅은 나를 런던이라는 이 아름답고 차가운 도시에 스며들게 해줬다. 어머니의 한마디에 ‘조깅’과 ‘런던’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얻은 셈이다. 연말에 한국에 들어가면 조깅을 하며 마음에 담았던 런던의 풍경과 감성을 어머니께 오랜 시간 설명해드릴 생각이다.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새벽 조깅도 함께 해보고 싶다. 권안옥 여사,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런던에서 딸 유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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