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대선, ‘최악 vs 차악’의 대결

이재명·윤석열, 중앙정치 경험 無·높은 비호감도·사법 리스크에 묶여… 비전 대결 아닌 ‘증오의 전쟁’중

‘최선 대 차선’ 아닌 ‘최악 대 차악’ 경쟁구도… 현재 정치 시스템에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시각도


내년 3월 대선에 나설 여야 거대 정당 후보가 이재명과 윤석열로 결정됐지만, 미래 비전의 대결을 기대하기는 힘든 분위기다. 무엇보다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은 두 후보가 서로를 겨냥해 ‘대장동 그분’과 ‘고발 사주’를 내세워 ‘증오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전장(戰場)에는 거짓과 선동, 배제와 독선이 넘쳐난다. 대한민국 유권자는 또다시 ‘두 개의 악(惡) 중 덜 나쁜 악’을 골라야 하는 ‘레서 이블(lesser evil)’, 차악(次惡) 선택의 딜레마에 봉착했다.

◇왜 최악과 차악인가

과거 선거 때에도 ‘차악의 선택’이란 자조(自嘲)는 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훨씬 심각하다. 첫째, 두 사람 모두 국회의원 ‘0선’으로 중앙정치의 경험이 없다. 군사 권위주의 시대가 무너지고 ‘1987 체제’가 수립된 이후 초유 상황이다. 정치는 단박에 대박을 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정치학교’에서 꾸준히 훈련받고 검증받지 않으면 위험하거나 허술하다.

둘째, 두 후보 모두 유례없는 비호감도를 지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비호감도가 호감도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높은 비호감도는 특히 청년층과 중도층의 외면을 불렀다. 이재명은 “청년 구하기라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공언했고, 윤석열은 청년 당원의 ‘탈당 러시’를 의식한 듯 “공정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둘의 20대 지지율은 10∼20%대, 30대 지지율은 20∼30%대에 묶여 있다.

셋째, 사법·수사 리스크. 대선 후보들의 운명이 사법 당국의 수사에 좌우되는 건 우리 정치사상 ‘초유의 참(慘)’이다. 이재명은 ‘대장동 그분’에 대한 수사 요구가 커지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윤석열은 ‘고발 사주’와 관련된 정황이 나오면 곤란해질 수 있다.

중앙정치 무경험자 대선 후보 탄생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거대 정당의 후보들이 ‘최선과 차선’ 아닌 ‘최악과 차악’의 경쟁 구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덜 나쁜지, 누가 덜 비도덕적인지, 누가 덜 거짓말쟁이인지가 유권자의 판단 기준이 되는 셈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내키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선거 구도가 문제”라면서 “차선도 아니고 차악을 선택한다는 심정으로 투표장으로 가는 선거는 정치의 우울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차악 선택의 원칙’

2002년 프랑스 대선 2차 투표 당시 파리 도시에는 그라피티(낙서 예술)가 유행했다. ‘파시스트가 아니라 사기꾼에게 투표하라.’ 사기꾼은 공화당의 자크 시라크, 파시스트는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이었다. 결과는 시라크의 승. 사기꾼이 파시스트를 이긴, 차악의 선택이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세현장에서 “선거란 최악보다 차악을 뽑는 것”이라고 외친 고등학생의 특정 후보 지지연설도 화제가 됐었다.

선거에서 차악의 원칙, 즉 ‘두 개의 악 중 덜 나쁜 악’을 택하는 원칙은 고대 로마 공화정 혹은 이전의 그리스 민주정 때부터 있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덜 나쁜 악이 더 큰 악보다 선호가 크고, 선호가 크다는 것은 좋은 것이므로, 덜 나쁜 악은 더 큰 악과 비교할 때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원칙은 곧 ‘두 개의 부도덕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을 때 ‘덜 부도덕한 것’을 선택해야 마땅하다는 원칙이기도 하다. 사기꾼과 파시스트 중에 누가 더 큰 악이고 누가 덜한 악인지를 가려 투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근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미국과 영국에서도 일찌감치 ‘정치 = 차악의 선택’이라는 관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민주주의란 늑대 두 마리와 양 한 마리가 저녁 식사로 뭘 먹을지 투표하는 것”이라고 풍자했다. 영국의 지도자 윈스턴 처칠의 말은 더 명료하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통치 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시도된 통치 체제를 제외한다면.”

◇대결의 언어는 ‘증오’

정치가 ‘차악 선택의 원칙’에 좌우된다면 유권자의 투표심리를 동원하는 핵심 수단은 정적(政敵)에 대한 검증을 명분으로 한, 실제론 카인의 본성을 닮은 ‘증오의 확대재생산’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 역시 ‘증오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증오의 재생산을 통한 권력의 창출·유지·재생산은 좌파의 전매특허였다. 좌파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자본주의 = 억압적 시스템’이라며 그 파괴를 위한 끝없는 증오를 주문했다. 에드먼드 버크 이후 가장 뛰어난 영국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로저 스크루턴은 책 ‘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에서 원한·증오를 뜻하는 ‘르상티망’이야말로 좌파 권력 유지의 동인이라고 지적했다.

정권을 잡기 전에도, 41% 득표로 집권한 후에도, 끊임없이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내고 집권 기간 내내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청산작업을 벌여 권력의 유지·확대를 도모해온 문재인 정권이 그랬다. 여당 후보 이재명 역시 윤석열에 대해 “독립군 행세하는 친일파”라 표현하며 후보직 사퇴와 정치 활동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보수 진영도 증오의 대결이란 경로를 밟고 있다. 윤석열은 이재명의 구속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이번 대선은 대장동 몸통과의 전쟁”이라고 말했다.

◇제3지대의 소구력

‘차악 선택의 불가피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념적 중도층, 정치적 무당파, 연령대로는 2030이다. 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을 갖고 강력한 변화를 희구하는 부류다. 이들을 겨냥한 ‘제3지대’의 소구력이 대선 변수가 될 수 있는 지점이다.

실제로 거대 정당 후보로 이재명과 윤석열이 결정된 후 2030이나 중도층엔 숨 쉴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낙연→ 무응답→ 홍준표’로 옮겨갔던 중도층이 다시 안철수·김동연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생겼다. 조만간 유권자층의 분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제3지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북 콘서트에서 “국민에게 최악과 차악을 골라야 한다는 선택지가 강요되지만, 저는 이를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여기에도 고민은 있다. 제3지대를 확장해 유권자의 선택지를 넓히는 게 좋은 일이 되려면, 음주운전자와 초보운전자의 경쟁 무대에 무면허운전자 아닌 모범운전자를 불러내는 경우에 한할 것이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최악 대 차악’의 대결 : 여야 거대 정당 후보가 결정됐지만, 비전의 대결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중앙정치 경험 없고, 비호감도 높고, 사법 리스크가 있어 ‘최선 대 차선’이 아닌 ‘최악 대 차악’의 대결로 갈듯.

차악 선택의 딜레마 : 유권자는 또다시 ‘두 개의 악 중 덜 나쁜 악’을 골라야 하는 ‘lesser evil’, 차악 선택의 딜레마에 봉착함. 유권자 투표심리를 동원하는 핵심 수단은 ‘증오의 확대재생산’을 통한 ‘증오의 전쟁’이 될 것.

제3지대의 소구력 : 중도층과 2030 상당수는 ‘차악 선택의 불가피성’을 거부. 이들을 겨냥한 ‘제3지대’ 소구력이 대선 변수로 작용할 것. 제3지대가 또 다른 ‘악’이 아닌 ‘선’으로 기능할 때 유권자 선택지가 넓어짐.


■ 용어 설명

‘차악의 선택’, 즉 ‘lesser evil’은 ‘the lesser of two evils’의 줄임말. 고대 그리스 플라톤 철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두 개의 악 중 덜한 악’을 선택하는 게 도덕적 선택이라는 의미를 가짐.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 저작. 고대 그리스 문명이 지닌 세계관의 정수를 담은 것으로 평가됨. 도덕적 행동의 습관화를 통해 도덕적 성품을 고양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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