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3년부터 식품기한 표기기준 변경
유통기한 표기 38년만에 폐지
유제품은 유통기한 표기 유지
8년 유예 뒤 2031년 기한 변경
원료·제조법·포장법·보관조건
맨눈검사·미생물 실험 뒤 설정
안전기한 ‘6~7일 → 8~9일’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 年 1조↓
美·유럽·日·中 등 세계적 추세
유통기한 : 기업이 소비자에게 식품 등을 유통·판매할 수 있는 기한. 식품 품질 변화 시점의 60~70% 앞선 기간으로 설정.
소비기한 : 규정된 보관조건에서 식품 등을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 없는 기한. 식품 품질 변화 시점의 80~90% 앞선 기간.
오는 2023년 1월부터 유제품을 제외한 대부분 식품의 ‘유통 기한’이 폐지되고 ‘소비 기한’으로 표시된다. 지난 1985년 도입된 유통기한 표기제가 38년 만에 사라지면서 마트 등에서 구매하는 식품에 표시되는 기한도 대폭 늘어나게 됐다. 먹을 수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유통기한 탓에 버려지는 음식물도 크게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유는 유예기간을 두고 적용하기로 했다.
◇유통기한 대신 안전한 식품 소비 가능한 기한 도입=유통기한이 폐지되고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기본적으로 식품 기한 표기의 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지난 7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제도 구축은 이미 마무리됐다.
현재 사용 중인 유통기한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식품 등을 유통, 판매할 수 있는 기한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식품 대부분에 적용된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정도 앞선 기간으로 설정한다. 반면 소비기한은 규정된 보관 조건에서 식품을 소비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뜻한다. 통상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기간이 길다.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에서 설정하는 만큼 유통기한보다 늘어나는 것이다. 소비기한은 원료·제조방법·포장법·보관조건 등을 고려해 맨눈 검사, 미생물 측정 등 실험을 통해 설정한다. 유통기한 표기가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날짜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기한 도입으로 품질 변질 시점이 10일일 경우 안전기한이 ‘6~7일’에서 ‘8~9일’로 늘어난다고 봤다.
다만 유통과정에서 변질 우려가 큰 우유 등 품목은 2023년 1월 이후에도 일정 기간 유통기한을 표기하기로 했다. 냉장보관기준부터 개선한 뒤 적용해야 한다는 업계의 지적이 받아들여져 유예기간 8년을 거친 뒤 2031년 1월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연간 1조 원 정도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 감소= 정부가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려는 주된 이유는 안전하고 정확한 식품 소비를 유도해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다. 유통기한은 식품을 매장에서 판매해도 되는 최종 기한을 뜻하는데, 대부분 소비자가 이를 섭취 가능 기간으로 오인해 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유통기한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식품을 버리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품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비용은 1조96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축구장 100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식품제조업체의 경우 연간 5308억 원의 식품 폐기 비용이 발생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분석 결과를 보면 2018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는 식품 생산이 원인이다. 6%는 음식 쓰레기로 인해 발생했다.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뀌면 식품 선택권이 확대되고 불필요한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 관계자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면 가정 내 식품폐기 감소로 연간 소비자는 8860억 원, 산업체는 260억 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해 소비자·산업체 모두 이익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면 식품 폐기량과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전한 식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가 자의적으로 소비 가능 기한을 판단해 식중독 등 사고를 일으킬 우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보다는 실제 소비 시점을 기준으로 표기하는 게 정확하고 안전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기한 표시는 국제적 추세=유통기한 폐지는 국제 기준에도 부합한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을 포함해 소비기한 표시제를 사용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호주, 홍콩 등은 소비기한과 품질유지기한(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을 병기하고 있다. 일본은 소비기한·상미기한(식품의 맛이 가장 좋은 기간)을 각각 표기하고 있다. 중국은 소비기한과 제조일자를 병기한다. 영국은 지난 2011년 9월 소비기한과 품질유지기한을 도입하면서 유통기한 표기 방식을 없앴다. 미국의 경우, 현재 유통기한·소비기한·품질유지기한 중에서 업체가 하나를 선택해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유통기한을 표시할 수 있지만 강제조항이 아닌 자율조항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2018년 식품 표시 규정에서 유통기한을 삭제했다. 유통기한이 다른 표기에 비해 소비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행 표기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병기 방식을 택하는 나라는 없다. 국내 연구 사례에서도 소비기한 단독표시를 제안한 바 있다. 유통·소비기한 병기는 소비자들과 산업계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다. 소비자단체는 두 개의 일자 정보 제공으로 소비자 혼란이 가중되고, 제도의 조기 정착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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