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1월,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시간이네요. 이맘때면 마음이 너무나 두렵고 추웠던 2년 전이 생각납니다.
딸 셋의 장녀로 집안에서 나름 맏이 노릇을 하던 저는 초등학교 동창, 집안의 귀한 장손인 남편과 결혼해 장손 외며느리 역할을 고스란히 이어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서울 사는 아들 내외가 부산 해운대까지 내려가 하는 일이라곤 추석, 설날 어른들 제사 정도였고 그나마도 시어머님이 준비를 다 해 놓으시면 하루 전 내려가서 부침개 좀 뒤집고, 당일에 설거지나 하는 게 고작이었지요.
하지만 시어머님은 40년 넘게 시아버지, 시증조부, 시고조부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제사에 14년 전 먼저 떠난 남편의 제사까지 얹어져 길고도 지난한 며느리 역할을 하느라 많이 고달프고 외로우셨을 겁니다. 50여 평 아파트에 50여 명의 친지가 모여들면 한 평에 한 사람, 그 많은 음식과 끊임없이 나오는 설거지 그릇들, 오고 가는 얘기들로 집 안은 혼이 쏙 빠질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지요.
그렇게 긴 시간 어머님이 고생을 떠안으시는 동안 집에서는 음식을 각자 조금씩 들고 오자는 의견도 나오고, 제수대행업체에 맡기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어머님은 이 모든 걸 반대하셨습니다. ‘그냥 내가 하면 된다. 업체 음식은 맛없어 못 쓴다더라.’ 그때 그 말씀을 오롯이 믿지 말고 제가 목소리를 냈어야 했는데….
그리 말씀하시고 버티시던 어머님은 속으로 병이 들었고, 4년 전 혈액암과 극심한 우울증 진단을 동시에 받으셨습니다. 부랴부랴 어머님을 서울대병원으로 모셔 와 치료에 전념했지만, 몸과 마음의 병은 서로를 갉아먹으며 점점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주치의는 예후가 6개월 정도니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가족이 조율하고 주변을 정리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1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양대병원에 어렵게 입원해 항암치료를 하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고갈된 체력과 우울증으로 인한 삶의 의지 상실은 어머님을 깊은 나락으로 빠트렸고, 결국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는 병원의 소견을 받고 요양병원으로 가시게 됐습니다.
어머님은 그렇게 3개월간 요양병원에 머무르시다 2020년 3월 영면하셨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코호트 격리로 가족과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님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보건법이 엄격히 적용돼 어머님 시신을 모시고 해운대까지 내려가는 앰뷸런스에 아들, 딸조차 동승하지 못했습니다. 장례도 최소화해 조문은 마음만 받겠다는 배려도 챙겨야 했습니다. 남편 옆에서 상주 역할을 함께한 중2 아들은 장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다녀온 지방이 ‘대구’가 아님을 학교와 학원에 알려야 했고요.
허둥허둥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돌아와서야 고단했던 30여 개월의 간병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유품을 정리하고 아이들의 일상을 챙기고 남편과 나를 돌아보니 어느새 지천명. 그나마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11월이네요. 돌아보니 고마운 분이 많습니다. 어머님을 위해 애써주신 의료진, 간병인분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늙고 병들고 아프다 떠날 겁니다. 그 당연하지만 쓸쓸한 순리를 따라야 할 때 외롭지 않게 내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은 비단 내 가족만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긴긴 불행에 지쳐갈 때 참 많은 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이 돼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분들의 감사를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며느리 김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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