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당시에도 모호성과 과잉 처벌, 현장 실정과의 괴리 등 법규로서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논란이 심각했다. 이 때문에 시행을 2022년 1월 27일로 1년 유예하고 문제점을 보완키로 했었다. 그러나 시행령은 물론 17일 발표된 고용노동부 해설서조차 문제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해설서가 233쪽에 달하고, 앞서 지난 8월에도 120쪽짜리 가이드북이 나왔다. 정부 설명서가 350쪽을 넘는 사실만으로도 법률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다.

해설서 내용을 보더라도 ‘처벌 대상과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혼동된다’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17일 성명이 설득력을 갖는다. 중대재해법은 기본적으로 근로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률이다. 하지만 해설서조차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설서는 ‘처벌 대상은 사업 전반의 안전·보건에 관한 조직·인력·예산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라며 ‘대표이사에 준하는 안전보건 담당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면책될 수 없다’고 했다. 안전담당 임원에게 최종 결정권이 없는 이상 대표이사도 처벌된다는 것이다. 안전관리자를 법적으로 강제한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안전 경영 방침을 세우라’고 했지만 구체적 기준도 없다. 노동부는 “기업 스스로 가장 잘 알 것”이라고 한다. 결국 무더기 소송을 부르게 된다. ‘원님재판’의 길도 열어 놓았다.

산업안전법이 있는 만큼 중대재해법은 중복 처벌의 성격도 갖는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최근 별도의 건설안전특별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산재 사고는 법이 없어 발생하는 것이 아님에도 처벌법만 만들면 해결되리라는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법 역시 가이드북과 해설서를 쏟아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전면적 개정이 시급하다. 그때까지 시행도 재연기해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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