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습니다 - 최우(1936∼2007)

깊어가는 가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묵직한 두통으로 불 꺼진 방에 누워 뒤척이는데,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여덟 식구의(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엄마, 우리 삼 남매) 가장이셨던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건강이 안 좋으셨다. 열 명의 아버지 형제는 어린 시절 병으로 혹은 6·25전쟁 통에 돌아가시고 조부모님의 자식이라고는 아빠와 고모 한 분만 살아남으셨다. 그런 연유로 할머니, 할아버지는 남은 외아들을 귀하게 여겨 보약이란 보약은 다 지어 먹이셨는데 아버지는 과다한 약 복용으로 간이 다 상하셨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늘 배를 움켜쥐고 쪼그려 앉아 신병을 비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 마음에 혹여라도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셔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거나, 먹고살 걱정을 하게 될까 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집 안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가 항상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사춘기를 겪을 여유가 내겐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에게 무뚝뚝하고 사랑 표현이 인색한 분이셨지만, 딸들은 종아리 한 번 때리지 않고 키우셨던 분이다. 오빠한테는 아들에게 거는 기대만큼 냉혹하셨지만, 딸들에게는 별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형편없는 성적표를 가져와도 “허허” 웃기만 하실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몸이 아파 그러셨는지 아니면 일찍 형제들의 죽음을 겪고 부모의 과보호 속에 성장해 그러셨는지 몰라도 아버지는 극히 우울한 데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셨다. 내가 글짓기로 상을 받아왔을 때도 표정은 웃으시면서도 “네까짓 게 별걸 다 했구나” 하고 외면하셨다. 그때는 서운하고 “네까짓 게’라는 말이 듣기 싫었지만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 생각해 보면 그조차도 아버지의 서투른 사랑 표현이었음을 알 것 같다.

친구 중 제일 이른 나이인 스물다섯 봄에 결혼을 했다. 젊었을 때만 해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보다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말이, 집 안의 무거운 기운이 못 견디게 싫어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생전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 건네고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했다. 내 결혼식 날,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 그때는 그 눈물마저 외면하고 나만의 행복한 둥지를 만들고 싶은 이기적인 딸이었다. 그 아버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몸이 약한 나를 걱정하셨던 아버지. 삼 남매 중 아빠를 제일 많이 닮은 나를 어여삐 여기신 아버지. 뒤늦게 철이 드는 걸까. 인생길을 굽이굽이 걷다 보니 그분의 녹록지 않은 삶도, 자식들을 향한 큰 사랑도 보인다.

아버지, 당신이 예뻐하시던 외손자 현석이가 어느새 서른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큰딸인 저는 중년이 됐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그 눈물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가을이 만개한 오늘 비로소 철이 든 당신의 딸이 당신의 영전에 꽃 한 송이 바칩니다. 그리고 뒤늦게 고백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당신의 딸 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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