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30代 리포트 - ⑦ 35세 여성기자의 ‘독박育我’ 일기

육아휴직후 ‘쉬는 사람’ 돼
가사·육아 전담 당연한 일로
월급 100만원 더 많은 남편
승진 배제 걱정에 휴직 못해

복직후 직장서 살아남기위해
아이 아파도 상사에게 말못해
남편은 점점 집안일 무임승차
일-가정 양립문화 와닿지않아


2021년 11월 23일. 약간 흐림. 아이가 태어나고 4년 8개월이 흐른 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자 엄마로서 쓰는 ‘육아(育我)’ 일기다. 아이를 낳고 엄마로서 직접 부딪힌 가정과 사회, 직장 생활은 30대 기혼 여성의 절박하고 절실한 삶의 모습을 그려 공전의 히트를 친 ‘82년생 김지영(작가 조남주, 2016년)’의 그 현실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지영과 나의 이야기는 2021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30대 기혼 여성의 ‘전형’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나에게도 젖어든 모성신화 =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애가 샘솟지 않은 건 엄마로서 내가 겪은 첫 불행이었다. 사람들이 으레 모성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나 역시 아이를 출산하면 저절로 아이를 끔찍하게 사랑만 하게 될 것으로 넘겨짚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모성애는 ‘신화’인 것일까. 31세이던 2017년 3월 20일 아이를 낳은 후 함께 집에 온 첫날 나는 젖을 먹다 토한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 이를 본 시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는 원래 잘 토한다”며 날 위로하셨다. 내가 운 건 아이가 안쓰러워서가 아니었다. 이 핏덩이를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서였다. 그때부터 난 ‘사랑이 부족한 엄마’라는 딱지를 스스로에게 붙이고 채찍질했다.

◇‘쉬는 사람’이 전담한 가사·육아 = 출산을 앞두고 12개월 휴직서를 낸 나는 집에서 ‘쉬는 사람’이 됐다. 가사와 육아는 많은 부분 나의 몫이 됐다. 나 역시 당연하다 생각했다. 거의 매일 청소를 했고 저녁을 차렸다. 아이가 새벽에 잠에서 깨 울면 벌떡 일어나 남편이 깰까 봐 아이를 안고 거실로 달려갔다. 고맙다던 남편은 시간이 갈수록 이 모든 일을 ‘어렵지 않은 일’이자 ‘당연한 일’로 치부했다. 나 역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서도 ‘집에서 하는 일’에서 ‘바깥 일’과 같은 가치를 찾기 어려웠다. 도돌이표 같은 가사노동으로 우울감은 깊어갔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아이를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아닌가 보다’ 하고 넘겼다.

◇가정 내 경제 패권 = 나 아닌 아이라는 ‘다른 존재’를 중심에 두고 사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라는 노랫말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됐다. 내가 나를 비워갈수록, 남편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다. 남편은 미안해하면서도 회식에 빠지지 않았다. 야근도 잦았다. 남편에게 6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쓰라고 얘기했지만 “같은 능력이면 육아휴직을 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굴 승진시키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나는”이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월 100만 원 더 버는 남편이 경쟁의 선두에 서는 게 이 가정에 이득이라는 현실을 수용했다고나 할까.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 복직 전 11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만난 또래 엄마들을 통해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 아이와 함께 0세 반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는 나처럼 복직을 준비 중이었다. 또 다른 엄마는 임신을 위해 대기업에서 퇴사한 후 2년간 ‘경단녀’가 됐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난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아 이른바 ‘조동(산후조리원 동기)’이 없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아이를 낳은 탓에 내가 겪은 부침의 ‘보편성’을 간파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생물학적으로 엄마가 됐다고 모성애가 자동 탑재되는 건 아니었다. ‘엄마니까, 여자니까’란 기대 역시 사회의 일방적 요구였다. 그제야 난 나 자신에게 ‘그만 괴롭(히)자’고 말할 수 있었다.

◇혼란, 그리고 정말 무가치한가 = 복직한 후 난 살아남기 위해 ‘아이 때문에 일을 뒷전에 두는 일은 없다’는 걸 부단히 증명해야 했다. 한 살을 갓 넘긴 아이는 오전 7시 30분 어린이집에 맡겨져 12시간가량이 지나서야 하원했다. 50대인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불쌍하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때 난 그 말씀을 귀담아듣지 못했다. 날 멈춰 세운 건 아이였다. 주말, 고열에 시달리며 온몸을 떨고 있는 아이를 내 품에서 떼어내 남편에게 안기며 특근을 위해 도망치듯 집을 나선 난 혼란스러웠다. ‘난 왜 상사에게 아이가 아파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나’ ‘사회적 요구에 갇히지 않겠다며 했던 선택들은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인가’ ‘가사와 육아는 정말 가치가 없나’.

◇가정의 평화는 누가 만드나 = ‘맞벌이 3종 세트’로 불리는 식기세척기·빨래 건조기·로봇 청소기가 쉼 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하는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은 나름대로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집안일에 나섰다. 내가 변화를 느끼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주중엔 격무와 술자리에 시달렸고, 주말에도 때때로 남편은 회사 업무 탓에 집을 비웠다. 나마저 퇴근이 늦는 날, 아이는 친구 엄마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주 52시간제 시행, 여성친화기업으로 변모 중인 남편의 회사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제도 밑단의 현실에선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평일 오후 공지된 코로나19에 따른 어린이집 긴급 폐쇄에 만사 제쳐 두고 달려간 것도 나였다. 코로나19 이후 지방에 계신 시어머니가 매주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주중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서야 이 사달이 일단락됐다. 시어머니가 함께 생활하자 남편은 어머니가 자신을 ‘대리’한다고 여긴 듯 특히 가사에서 더 멀어졌다. ‘조별 활동’인 집안일에 남편의 무임승차가 늘며 나 역시 지쳐갔다. 그렇지만 죽을상을 하고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우는 것도 진절머리가 났다. 물론 앞으로도 난 남편에게 가정 내 ‘의무 이행’을 요구하겠지만, 직장의 일·가정 양립 문화가 실질적으로 정착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가정의 평화는 당신 손에 달렸다”고 말하고 싶다.

◇더 나은 세상을 너에게 = 어느덧 네 살이 된 아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존재가 됐다. 누군가 만든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니 부담감은 줄고 행복감은 점점 커졌다. 때때로 난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내 아이가 이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결정을 기대할까’라고 자문하며 답을 얻는다. 내 선택들이 아이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번 주말도 ‘독박 육아’다. 아이랑 뭘 하고 놀까.

민정혜 기자 leaf@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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