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가운데)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5·18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열린 항소심 재판 출석 뒤 부축을 받으며 광주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가운데)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5·18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열린 항소심 재판 출석 뒤 부축을 받으며 광주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영욕의 인생 ‘過와 功’

쿠데타로 집권한 뒤 탄압정치
5·18책임 인정 않고 사과 거부
1000억가량 미납 추징금 안내

경제성장률 年평균 9.3% 기록
88서울올림픽 유치 등 성과도


23일 90세로 세상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항쟁 탄압, 민주주의 억압, 정경유착 및 비자금 조성, 권위적인 군사 문화 확산 등 역사적 과오를 남겼다. 다만 1980년대 ‘3저’ 시대를 이용한 높은 경제성장 및 서울올림픽 유치는 공으로 평가된다. 그의 사망은 육사 동기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28일 만이다. 하지만 생전 과오를 사과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끝까지 전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끝까지 거부했고, 비자금 추징금도 미납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후 정국의 혼란을 틈타 그가 이끌던 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이끌고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어 이에 저항해 일어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뒤 체육관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정권 불만 세력에 대한 유화 정책 차원에서 야간통행 금지 조치 해제와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 등을 시행했다.

전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탄압해왔으며 이는 정권 말인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5개월 뒤인 6월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사망 사건은 6·10 민주항쟁으로 번졌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6·29 선언으로 이어졌다.

전 전 대통령은 1988년 임기를 마친 후 1995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구속기소됐고 반란수괴 및 살인·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전 전 대통령은 반성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

2017년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겨냥,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8년 5월 기소됐다. 2020년 11월 있었던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인 2021년 5월 항소하면서 법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추징금도 25년이 넘도록 미납 상태다. 추징금 집행 시효가 2013년 10월로 만료였지만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을 통해 연장됐다. 현재까지 전체 추징금의 절반 이상인 1235억 원가량이 집행됐다.

전 전 대통령은 역사적 과오에도 기록적인 경제성장과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등의 공적도 적지 않다. 1970년대 말 중동발 경제붐과 1980년대 중반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 호황’의 영향도 있었지만, 김재익·사공일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 관료에 전권을 위임해 고도성장을 이뤘다. 전 전 대통령 집권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9.3%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높았고, 집권 첫해인 1980년 1714달러이던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집권 마지막 해인 1988년 4754달러로 2.8배로 늘었다. 전 전 대통령이 유치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을 글로벌 무대에 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고도성장 과정에서 기업과 정치권의 정경유착은 만연해졌고, 재임 중 70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정철순·김유진 기자

관련기사

정철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