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의 젠더 갈등은 지난 2016년 30대 남성이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사회문제로 표면화됐다. 당시 시민들이 사건 현장 인근인 강남역 10번 출구 유리벽에 추모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피해자를 기리고 있다.  뉴시스
청년층의 젠더 갈등은 지난 2016년 30대 남성이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사회문제로 표면화됐다. 당시 시민들이 사건 현장 인근인 강남역 10번 출구 유리벽에 추모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피해자를 기리고 있다. 뉴시스

■ 대한민국 30代 리포트

⑧ 절박한 젠더·갈등의 젠더 - 원인과 해법

IMF·금융위기후 극심해진 경쟁
남성들 자기비하·여성혐오 늘고
여성들은 일상 위협 공포로 인식
미투·82년생 김지영이 기폭제役

2030남성들 ‘역차별 귀결’ 우려
“여성도 군복무 준하는 봉사 필요”

올바른 성평등 교육 제도화 필요
남녀 다 ‘강요된 역할’ 벗어나야


“이 범죄의 이름은 ‘아파트 살인’이 아니라 ‘교제 살인’이다. 이별을 통보했다고 칼로 찌르고 19층에서 밀어 죽이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장혜영 정의당 의원)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은 2021년을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베란다 밖으로 던진 사건을 두고 정치권이 각각 여성과 남성의 편에 서서 ‘대리전’을 벌였다. 내년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젠더 문제를 20∼30대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 결국 남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만큼 청년층에게 젠더 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예민한 사안으로 자리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2015년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 논문에서 지금의 한국 청년들을 ‘생존주의 세대’, 이들이 공유하는 감정을 ‘불안’이라고 정의한 건 젠더 갈등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극심해진 경쟁, 고용 불안, 저성장은 청년 세대의 ‘취직-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당연한 삶의 과정을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가족의 생계부양자로서 ‘남성성’을 획득하고 인정받았던 남성들의 타격이 컸다. 일부 남성은 ‘루저’ 등으로 자신을 희화화하거나 비하했고, 동시에 일부에선 한정된 기회를 두고 경쟁하는 여성을 향한 혐오를 본격화했다.

일방향이었던 일부 남성의 ‘여성 혐오’가 양방향인 ‘젠더 갈등’으로 변화한 건 2016년 5월 강남역 인근 한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들이 응집하기 시작하면서다. 이전 ‘된장녀’ ‘김치녀’란 비하적 표현에도 반응하지 않던 여성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를 자신의 ‘일상’을 위협하는 공포로 인식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졌다고 교육을 받았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 좌절감을 느끼며 분노하던 젊은 여성들에게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자신이 당한 성범죄 사실을 알리며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 한국 사회가 30대 여성에게 가하는 각종 차별을 한 여성의 삶으로 풀어낸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각의 격화된 젠더 갈등은 극단화한 형태인 ‘젠더 카니발리즘(극한 상황에서 동종을 잡아먹는 풍습)’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엔 ‘퐁퐁남’ ‘설거지론(여성을 그릇에 비유, 더러워진 그릇을 설거지한다는 의미)’과 ‘짬처리론(남성을 음식물쓰레기에 비유, 문란한 남성이 어리고 순진한 여성과 결혼해 고생시킨다는 의미)’ 등 신조어가 양산되며 젠더 갈등은 커뮤니티를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군 가산점제 폐지 등 여성들의 남녀 차별 반대 주장이 거세지고 젠더 갈등이 커지면서 20∼30대 남성들의 반발도 본격화했다. 최근 젊은 남성들은 ‘사회적 약자는 보호해야 하지만 성 평등 주장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귀결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공정’ 담론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거론하는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인 병역의무제를 보면, 과거엔 병역의무를 수행한 남성이 고용 시장은 물론 임금 등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서 우위를 점하며 일정 부분 보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 남성들에게 군 생활은 자기계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생애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기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직장인 김유철(31·가명) 씨는 “생물학적으로 신체가 다른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이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국가를 위해 뭐라도 해야 공평하지 않냐는 거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젠더 갈등을 청년들이 사회의 발전적 변화를 시도하는 징후로 해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홍중 교수는 “젊은 여성들이 발전시킨 ‘안전’이란 의제가 앞으로 다른 사람 내지 동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또한 젊은 남성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공정이 지금은 형식적 공정인 것처럼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 인식이 더 나아가 포괄적 정의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SNS를 통해 파편화된 젠더 정보가 유통되면서 단순화 과정을 거치는데, 그 결과 오해가 오해를 낳고 있다”며 “포괄적 성 평등 교육으로 소수자의 관점에서 각종 사회 이슈 속에 무엇이 가려져 있는지 성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 평등을 위해 추구했던 정책들은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며 “청년들이 고정된 성 역할과 규범을 넘어 보다 평등한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정혜·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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