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오르간학교서 음악 공부
드보르자크 영향 ‘현악곡’ 작곡
귀향뒤 학교세워 40년 후학양성
50세때 예누파 초연하며 호평
62세 오페라하우스 무대 올라
클래식 음악 중엔 유명한 책 속에 등장해 덩달아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경우도 있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첫 부분을 듣고 이건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고 알아맞힐 사람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소설 ‘1Q84’ 중 한 구절이다. 이 소설 덕에 많은 사람이 ‘신포니에타’라는 음악을 찾아 들었고 음반도 많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여전히 대중에겐 생소한 동유럽의 한 이름이겠지만 체코 출신의 야나체크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레오시 야나체크(1854~1928)는 체코 동부에 있던 모라비아의 후크발디에서 교사였던 아버지 이르지와 어머니 아말리에 사이에서 14자녀 중 10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1살이 되던 해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부속학교에 입학, 그곳의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음악적 열정을 키워나갔다. 15살이 되던 해 왕립사범학교의 교원 양성과에 입학했고 3년간의 과정을 수료한 후, 모교인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부속학교에서 교사와 성가대의 부지휘자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야나체크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눈여겨본 사범학교의 교장은 그에게 더 공부할 것을 권했고, 그는 체코의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나갔다.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그는 체코의 대작곡가 드보르자크와 만나 많은 음악적 교류를 나눴고 1877년엔 그의 영향을 받은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을 작곡했다. 프라하에서 오르간 학교를 1년 만에 졸업한 그는 25살이 되던 1879년 음악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독일의 라이프치히 음악원과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으로 다시 유학길에 올랐으나, 그곳의 보수적인 커리큘럼에 싫증을 느껴 학업을 마치지 않고 조기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1881년, 그는 고향에 오르간 학교를 세워 직접 교장으로 취임하고, 1920년까지 약 40년간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50세가 되던 해인 1904년, 10년간에 걸쳐 완성한 그의 걸작이자 대표작인 오페라 ‘예누파’를 초연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12년 뒤인 1916년엔 마침내 프라하의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게 된다. 즉, 야나체크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는 그의 나이 62세부터였다. 그리고 그가 남긴 걸작, 광시곡 ‘타라스 불바’(1918) 등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약 10년 전인 만년의 시기에 작곡됐다.
특히 1925년 체코인의 민족정신과 독립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피세크에서 열리는 소콜 체전에 참석한 야나체크는 군악대의 관악 연주를 듣고 영감을 받게 된다. 당시 국민은 더 힘차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길 희망하고 있었다. 야냐체크는 이런 국민에게 조국에 대한 긍지와 힘찬 에너지로 가득 찬 음악을 선사하고 싶었고, 이듬해인 1926년 찬란한 오프닝 팡파르에 빛나는, 그의 음악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신포니에타’를 완성했다. 이 걸작이 프라하에서 초연됐을 때, 그의 나이 72세였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신포니에타
야나체크의 ‘만년 3대 걸작’으로 꼽힌다. 총 5악장으로 구성된 디베르티멘토(18세기 유럽 귀족들의 여흥을 위한 기악 모음곡) 형식의 작품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군대에 헌정됐다. ‘신포니에타’란 이탈리아어로 교향곡을 의미하는 신포니아(sinfonia)의 축소형으로, 교향곡에 비해 작은 규모나 형식이 간소한 소교향곡을 뜻한다. 하지만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제목과 다르게 금관 파트에만 25대가 배치되는 대규모의 편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1악장과 5악장의 장중한 금관 팡파르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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