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합니다 - 아버지 길영수·어머니 이경숙

저희 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하신 어머니, 아버지 덕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과 집을 지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늑하게 정착했습니다. 저는 그 집을 기점으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지금은 아예 다른 곳에서 살지만, 그 집은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곳이 됐네요.

아버지는 내년이면 정년을 맞이하십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오신 것입니다. 그 세월을 하얗게 센 머리와 곳곳에 난 흰 수염과 눈썹으로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이 거기에 멋들어지게 담겨 있더군요. 고등학교 때부터였을까요. 저는 아버지의 머리를 까맣게 염색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면 저를 따로 불러 염색을 해달라고 하시던 날이 쌓이고 쌓여 저는 어느새 성인이 됐고 아버지처럼 취직도 해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아버지께서 어찌 저리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저력이 궁금하기만 하네요. 하지만 퇴근 후 집에 오시면 그저 여느 아저씨이자 아버지가 되니 저는 통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회사에서 된통 깨지고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고 떨어지질 않는지 그런 일이 늘어날수록 아버지나 아버지를 뒷바라지하신 어머니가 그저 하늘같이 크게만 보이곤 했습니다. 세상은 넓고 거칠며 또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더군요. 자유형뿐만 아니라 접영에, 더한 것까지 요구하더라고요.

최근에 저는 좀 더 안정적인 곳으로 이직하면서 퇴직금을 수령했습니다. 제게 기꺼이 셀프 선물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께도 빼놓지 않고 용돈을 드렸습니다. 오랜 회사 생활로 경조사 챙길 일이 많으신 걸 익히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느냐. 돈이 똑 떨어졌었다. 고맙다’고 하시며 아버지께서 반색하셨습니다. 그 문자에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요즘같이 자주 이직하는 MZ세대 사람인 저는 아버지의 오랜 회사 생활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 바쁜 회사 생활에도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까지 마무리하고 있으십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잠시 건강상의 문제를 겪긴 하셨지만, 현재는 아주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고 아버지 자신을 위해 회사 생활을 멈추지 않으신 걸 보면 정말 집중력이 대단하십니다.

제게는 늘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지만, 은근히 기대하고 있으셨단 걸 압니다. 비록 제가 그 기대에 부응하진 못했지만 저는 어머니, 아버지의 열렬한 애정 덕에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났습니다. 저는 이 생활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 덕분인지 저는 정년까지 쭉 어떤 일이든 하고 싶습니다. 그런 기나긴 열정의 발자취를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물론 아버지 연봉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언젠가는 그 언저리쯤은 따라가리라 오늘도 아버지께 제 포부를 펼쳐 보입니다. 종알종알 떠드는 제가 우스운지 아버지께서 크게 웃으십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는 당신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

길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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