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균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北 핵무기 폐기하면 평화협정”
2007년 부시 ‘종전’논의 촉발
盧·김정은 “3~4자 종전선언”

文은 대화 불쏘시개 활용 의도
평화협정과 종전 분리 어려워
대북 정책 실패 만회용 더 위험


지지부진해 보이던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이 급물살을 타는 듯한 분위기다.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외교부 1차관은 종전선언 추진에 있어 한·미 간 이견이 없고 언제·어떻게 하는지 방법론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앞서 외교부 장관도 “한·미 간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했고, 주미대사는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 인사들이 낙관론을 남발하는 데 비해 미국 측에서 나오는 얘기는 별로 없다. 지난 10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말에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시기·조건에 관해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부정적인 말을 했을 뿐이다. 도대체 문 정부는 왜 이렇게 종전선언에 집착할까?

종전선언의 기원은 2007년 9월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 후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를 폐기하면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이를 검증하는 조건으로 정전 상태에 있는 6·25전쟁을 최종적으로 끝내는 평화협정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 구상이 앞뒤 거두절미하고 ‘종전선언’으로 명명돼 그해 10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들어가고, 10여 년이 지난 2018년 판문점 선언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모호하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구두 약속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맞는다면 북한은 종전선언에 관심을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듬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오직 제재 해제에 매달렸고, 다른 제안들은 안중에 없었다. 지난 9월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3번째로 종전선언을 제안한 데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상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였다. 적극적인 호응이라고 절대 볼 수 없는 말이다.

현 정부는 종전선언이 정치적·상징적 조치로 정전체제를 포함한 법적·제도적 체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하고, 이것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전선언을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불쏘시개 정도로 쓰자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란 기대는 희망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외려 북한은 이미 얻은 것은 주머니에 넣고 다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외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미국이 염려하는 부분이고 ‘조건의 차이’일 것이다.

원래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교전 당사국들이 평화협정을 맺으면 제1조에 들어간다. 굳이 분리해서 하게 되면 평화협정이 언제 될지 기약도 없이 정치적인 종전 상태와 법적인 정전 체제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상황이 된다. 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종식된 마당에 한·미 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며, 유엔사는 또 왜 존속해야 하는지 등 문제 제기가 북한·중국과 심지어 국내에서 끊임없이 이어질 게 분명하다. 우리끼리 의견이 갈리고 대립하고 적전 분열이 일어나면서 미국과의 동맹도 약화할 것이다.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한 비핵화에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고,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미·일 등 관련국들과 북한 간 관계 정상화가 논의되는 시점 즉, 비핵화의 입구가 아닌 출구에서 다뤄져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5년 내내 남북문제에 매달렸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문 정부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만회해 보려고 종전선언 추진에 집착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 정부의 열정에 등을 돌리지 못해 어느 정도 맞춰 줄지, 북한이 내년도 한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이벤트에 호응해줄지 미지수지만, 지금은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차기 정부에 차분히 공을 넘겨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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