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종의 시화기행 - (98) 로마,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下)
대리석으로 빚어낸 모세 조각상
한 호흡, 한 호흡을 망치에 실어
거대한 규모에 압도적인 기운이…
고독의 맨 아래까지 내려가 작업
스스로 최고의 작품이라 여긴듯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십계명 들고 뿔 난 모습의 모세
우상을 숭배하는 인류에게 경고
나는 지금 40m 길이의 그림 작업에 매달려 있다. 아침에 하얀 화판 앞으로 다가가면 백색 공포 비슷한 것이 온다. 칼 대신 붓 한 자루 들고 맹수 앞에 선 느낌이다. 저녁이 돼 허리를 펴고 일어설 때쯤에야 두려움은 분홍빛의 안온한 느낌으로 바뀐다.
어느 날 문득 이보다 큰 작업을 한 작가가 있었던가, 뒤적여보니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가로세로가 41m에 14m 면적이었다. 게다가 천장까지의 높이만 해도 20m에 달했다. 나는 기껏 허리를 구부릴 뿐이지만 그는 오랜 시간 까마득히 높은 비계 위에서 고개를 젖힌 채 작업해야 했다. 작업이라기보다는 거의 고행이었을 것이다. 목디스크에 시달렸을 것은 불문가지다. 60대의 나이에 그 엄청난 집중력과 열정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여기서 다시 시스티나 천장화의 그 압도적인 기운과 만난다. 이번에는 거대한 조각이다. 카라라 석산에서 막 떠내온 듯싶은 대리석 바윗돌로 그만의 모세상을 빚어놓은 것. 성경 속의 다윗을 자신만의 다비드로 조각했듯 한 호흡 한 호흡을 망치에 실어 미켈란젤로의 모세로 만들어낸 것이다.
조각과 회화, 건축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예술가였던 그는 일생을 성경 속 인물이나 상황을 구현해 내는 데에 바쳤다. 한두 줄 문장만으로도 경이로운 시각예술의 세계를 펼쳐 보여줬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이제 그의 작품으로 성경을 읽는다. 그의 그림과 조각이 눈으로 읽는 성경이 된 것이다. 돌을 들고 골리앗 앞에 선 시골 목동 다윗이 그토록 완벽하고 아름다운 몸을 하고 있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통해 성경 속의 데이비드 혹은 다윗을 상상한다. 그런데 그의 모세상 앞에 섰을 때 문득 스친 생각 하나. 바로 괴테가 그의 ‘시와 진실’에서 힘줘 갈파했던 내용이다. “모든 예술의 최고 과제는 가상을 통해서 더 높은 실재에 대한 환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상의 세계를 지나치게 현실화시킴으로써 결국 상식적인 현실만 남게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나는 이탈리아의 열 개 도시를 도는 동안, 그리고 미술관, 박물관, 성당의 수많은 걸작 앞에 서는 동안 괴테의 그 글이 잠깐, 하며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잠깐, 저것은 실재가 아닌 실재에 대한 환상에 다가가려 한 한 예술가의 창작물일 뿐이라네, 하고. 그뿐 아니라 잠깐, 이 성당은 숫제 미술관이로군 조금만 예술가적 상상력이 절제됐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천지창조’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백발을 휘날리는 노인으로, 그분과 손가락으로 연결된 최초의 인간 아담은 근육질의 청년으로 설정돼 있다. 물론 “가상을 통해 더 높은 실재”를 구현하고 싶은 욕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켈란젤로라는 창을 통해 성경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창을 통해 그 창 너머로 분절돼 나타난 한 현상으로서의 그의 작품을 보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고 그편이 훨씬 마음 편했다. 그런데 성당 앞의 모세상 앞에 섰을 때 어디선가 만난 듯한 형상이라는 느낌이 왔다. 모세상은 옛날에 보았던 이집트 아부심벨의 조각상들처럼 앉아 있는 품새뿐 아니라 그 앞에 서서 고개 숙인 사람 또한 비슷했다.
고독의 맨 아래까지 내려가지 않고서 저런 정수(精髓)는 나오지 못한다. 돌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의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은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이 침묵의 공간에 끼어들거나 교란시키려 할 때면 발동됐던 것 같다.(코뼈가 내려앉은 것도 자신의 작품을 비웃고 폄훼했던 한 동료와의 주먹 다툼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미켈란젤로는 끌과 망치를 놓고 일어서며 스스로 모세상을 최고의 득의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자신의 작품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각상은 말이 없었다. 망아(忘我)의 경지에서 그가 중얼거렸다는 말은 이렇다. “모세여, 왜 말이 없는가.”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몰아지경’으로 작업 끝낸 미켈란젤로
작품 향해 “왜 말을 하지 않는가” 외쳐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쇠사슬의 베드로’라는 뜻의 성당에는 베드로가 마메르티노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를 묶었다는 두 개의 쇠사슬과 함께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 모세상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모세상은 미켈란젤로의 3대 성상(聖像) 조각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 몰아지경으로 작업을 끝내고 미켈란젤로가 조각상의 무릎을 치며 “모세여 왜 일어서지 않는가”라고 했다거나 “모세여 왜 말을 하지 않는가”라고 했다는 말들이 전해진다.
미켈란젤로는 평생 율리오 2세 등 교황의 요청에 의해 성화나 성상 조각을 했는데 자주 작품을 놓고 교황청이나 종교지도자, 교황과 불화했고 작품을 하다 말고 자취를 감춰 버린 적도 있었다. 그가 좋은 대리석을 보면 자주 계약을 했던 것도 주문 제작이 아닌 순수한 자기 작품을 하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상 조각들을 고도의 집중력과 몰입, 그리고 그만의 해석 방법으로 하나같이 걸출한 작품으로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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