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익훈, 곰 인형을 든 아이, 철에 우레탄 도장, LED, 20×50×56㎝, 2020
엄익훈, 곰 인형을 든 아이, 철에 우레탄 도장, LED, 20×50×56㎝, 2020
길고 무료한 겨울밤 호롱불 하나면 나름 즐거웠던 아련한 시절이 있었다. 기름 아끼라는 부모님 성화 속에, 잠시 잠깐 누나의 현란한 손놀림 속에 등장하는 ‘토끼와 여우’. 손 그림자의 판타지도 황홀하지만, 곁들여지는 이야기도 참 구수했지. 두고두고 가시지 않는 여운들이 우리를 화가로, 배우로, 작가로 키웠다.

형광등이 생기면서 사라졌던 손 그림자. 그로부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마주하게 된다. 엄익훈, 그는 손동작 대신 자신의 조각을 조영(照影)해 생수 같은 동심을 퍼 올린다. 하지만 관객은 잠시 혼란스럽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손그림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조각의 꼴과 그림자의 꼴이 너무 다르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러한 작가의 마법은 상향의 빛과 하향의 시선 차이에서 온다. 철편(鐵片)들로 만들어진 조각 형태는 종말의 그렘린 같다 할까. 그런데 그것의 그림자는 천진난만한 소년 소녀의 대조적인 모습이다. 본질과 현상의 왜곡이 비일비재한 세계를 암시하는 것도 같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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