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붕괴는 사법부 독립의 훼손으로 완성되고, 사법부 독립 훼손은 법관 인사(人事) 농단에서 시작된다. 헌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된 법관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6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를 비판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법관회의는 법원 공식 조직과는 무관한 일선 법관들의 회의체인데, 김 대법원장이 공식 인정해 상설화한 기구로 ‘대법원장 홍위병’ 지적까지 받아왔다.

법관회의는 “판사의 전보에 관한 인사 원칙과 기준은 준수돼야 하고 원칙과 기준을 변경할 경우 사전에 공지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2월 정기 인사에서 사법 농단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윤종섭 부장판사를 6년째 중앙지법에, 4년째 같은 재판부에 유임시킨 것을 지적한 것이다. 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지법에 3년, 같은 재판부에 2년 근무하는 게 원칙이다. 윤 부장판사는 사법 농단 사건과 관련,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했다.

김 대법원장의 인사 농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맡은 김미리 전 중앙지법 부장판사는 4년간 유임됐다. 김 부장판사는 해당 사건의 준비기일만 6차례 진행해 본재판을 1년3개월간 지연시켰다. 이런 김 부장에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동생 채용 비리 사건,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비위 감찰 무마 사건 등 현 정권 핵심 인사 연루 사건을 집중 배당했다.

이런 인사 결과, 주요 보직을 친여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장악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97명 중 33명, 법원행정처 판사 12명 중 5명, 전국 지원장 41명 중 10명, 법관회의 운영진 절반이 이 연구회 소속이다. 법관회의는, 김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고, 거짓말까지 한 사실이 탄로났을 때도 침묵을 지킨 조직이다. 김 대법원장은 아들 가족의 공관 거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집행유예 선고 직후 며느리가 소속된 한진 법무팀의 공관 만찬으로도 지탄을 받았다. 오죽하면 법관회의마저 문제점을 공개 제기하고 나섰겠는가. 김 대법원장은 신속히 거취를 정리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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