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우석의 푸드로지 - 통조림의 역사와 요리
1804년 佛전투식량 공모전 기원
1·2차 세계대전 치르며 발달 거듭
美회사 ‘스팸’ 만들어 군납 돈방석
캠벨제품 좋아했던 미술가 워홀
점당 수억원 ‘통조림 연작’ 화제
80년대 후반 국내서 참치캔 인기
90년대 깻잎·김치 등 반찬 등장
자취생·여행객 필수 아이템으로

일상에서 아주 빈번히 접할 수 있는 통(桶)조림은 식품을 멸균한 다음 금속통에 넣고 산소를 차단한 가공식품을 의미한다. 최초 발명됐을 당시 주석통(tin canister)에 담았던 까닭에 영어로 캔(can)이나 틴(tin)이라 부른다. 일본은 간즈메(かんづめ)라 부르는데 이는 ‘캔(缶)에 담았다’는 말이다. 장군 부(缶)는 두레박 관으로도 읽힌다.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어르신들이 간쓰메, 또는 간주메라 부르는 것은 여기서 나왔다. 우리말 ‘통조림’은 이를 순화시켜 나왔는데 20세기 초부터 쓰였다.
통조림은 전쟁이 낳은 음식이다. 전투식량의 원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존성과 편의성이 탁월한 통조림은 전시에 아주 유용하다. 통조림은 처음에 유리병에다 음식을 담은 병조림으로 출발했다.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에 나왔다. 당당히 공모전을 거쳐 수상한 발명품이다. 1804년 프랑스군 당국이 전투식량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프랑스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Nicola Appert)가 당선돼 무려 1만2000프랑이란 거금을 받아갔다.
거액의 상금을 내줬지만 실효는 없었다고 한다. 병조림은 운송 중 무겁고 잘 깨지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당시 유리 제조 기술 수준이 낮아 제조원가도 높았다. 6년 후 1810년 영국인 피터 듀란드(Peter Durand)는 아페르의 원리를 응용해 유리병 대신 쇠통에 담는 현재의 통조림과 유사한 방식을 개발했다.
당초 태생부터 전투식량이었던 통조림은 이후 2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다. 미국이 통조림 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이 두 번의 전쟁 덕(?)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그 유명한 스팸(spam)이 활약했다. 스팸은 최초의 통조림이 발명된 지 100년도 훨씬 지나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통조림으로 그 위상을 공고히 지키고 있다. 미국 호멜 식품(Hormel Foods)의 제품으로 프레스햄 통조림에 속하는 스팸은 양념 햄(SPiced HAM)을 의미하며, 돼지고기 어깨 살 햄(Shoulder of Pork and hAM)을 줄인 의미도 있다고 알려졌다.

스팸은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 세계에서 판매량이 2위(1위는 미국)로 높을 뿐 아니라 그 위상도 상당하다. 명절 선물용 세트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받는 이의 입장에선 요모조모 쓸 곳이 많고 오래 둬도 되니 환영하는 아이템이다. 한식 식재료로도 진입했다. 부대찌개, 섞어찌개 등에 빠지면 안 될 정도다.
캠벨 수프 통조림(Campbell Soup Can)도 명성에선 밀리지 않는다. 세계적 대중미술가 앤디 워홀(1928∼1987)이 캠벨 수프 통조림을 실크스크린 판화 연작으로 그려 인기를 얻었다.(실제로도 그는 이 통조림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역시 미국 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120년 전인 20세기 초반에 출시해 단숨에 시장을 휘어잡았다. 그럭저럭 맛있는 내용물에 저렴한 가격이 인기요인이었다.
요즘은 정말 다채로운 제품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 중 토마토와 치킨누들 시리즈가 가장 유명하다. 국내에선 코스트코 푸드 코너에서 판매하던 뉴잉글랜드 클램 차우더 수프 제품도 인기가 높다. 개당 1∼2달러로 연간 100만 개씩 팔리는 미국에선 서민 음식으로 성공했지만, 정작 워홀의 그림은 한 점당 몇억 원이 훌쩍 넘어간다.
미국 통조림 산업의 역사는 길고 다양하다.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피셔맨스 워프 인근 캐너리 로(Cannery Row)란 작은 마을이 있다. 1950년대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정어리 통조림을 만들던 공장과 이곳에 근무하던 주민이 사는 마을이었는데 1958년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의 제목으로 개칭했다. 미국의 통조림 산업은 하와이 돌(dole)의 파인애플, 델몬트 오렌지 시리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물론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등 음료 회사도 병입(bottled)에서 알루미늄 캔으로 전환,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통시장을 석권 중이다.
6·25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통조림이 일찌감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태다. 1980년대 후반 꽁치와 고등어 캔 위주에서 참치캔으로의 이동은 있었지만 여전히 이들 생선 통조림은 잘 팔려나간다. 꽁치 김치찌개니 참치찌개니 하는 것들은 죄다 통조림으로 만든다. 1980년대까지 통조림이 대한민국 상류사회의 식단이던 시절을 겪었으니 고급 식품의 이미지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당연히 선물세트로 주고받는 데 스스럼없다. 황도, 백도와 깐 포도 등 과일 통조림도 인기를 끌었다. 번데기나 골뱅이처럼 낯선 재료도 통조림으로 널리 유통됐다. 현재 술집에서 판매하는 번데기탕이나 골뱅이 무침은 대부분 통조림을 이용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 꽁치김치찌개=짱이네. 서울시청 뒤 분식집이다. 뚝배기에 꽁치김치찌개를 끓여준다. 꽁치통조림을 넣으니 김치찌개의 맛이 한층 고소해진다. 참치통조림보다 진한 맛이 일품. 무엇보다 1인분씩 각각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해도 무방하다는 점이 좋다. 달걀말이 등 깔린 반찬도 푸짐하다. 서울 중구 무교로 6. 금세기빌딩 지하 1층. 8000원.
◇ 스팸구이=성원식품. LA갈비를 잘하는 을지로 성원식품. 스팸 작은 통 하나를 까서 큼직하게 썰어내고, 전을 부치듯 달걀 옷을 입혀 구워준다. 스팸 제조사인 호멜에서 박수 칠 일이다. 지져낸 면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또 짭조름하니 맥주 안주로 좋다. 갈비와 함께 곁들일 반찬으로도 좋다. 서울 중구 을지로20길 36. 1만2000원.
◇ 골뱅이무침=대성골뱅이. 일명 주당들에게 ‘무교동 골뱅이’로 소문난 집이다. 골뱅이 통조림을 따서 채 썬 대파와 고춧가루에 무쳐준다.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골뱅이가 아삭한 채소, 삶은 달걀 등과 잘도 어울린다. 옛날에 서울에도 있던 가맥(가게 맥주) 방식이다. 스팸도 있으니 통조림이 없으면 유지가 될까 궁금한 집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1길 47. 1만9000원.
◇ 번데기=맛나호프. 외국인들이 가장 경악한다는 한식 식재료인 번데기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맛을 들이면 꽤 괜찮은 안줏감이다. 통조림을 따서 고춧가루를 넣고 팔팔 끓여내 탕으로 끓이거나 식용유를 두르고 볶아내면 맛이 더욱 산다. 구수한 국물을 머금어 부드러운 이 집 번데기탕 한 숟가락에 소주잔이 춤을 춘다. 서울 중구 다동길 10. 9000원.
◇ 묵은지꽁치조림=시골아낙. 내륙이라 그런지 통조림 생선을 다루는 법에 통달한 듯하다. 부여 궁남지 앞 맛집으로 소문난 이 집은 묵은지에 꽁치통조림을 넣고 지져낸 조림이 맛있다. 짜릿할 정도로 매콤하고도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 상추쌈에 마늘과 함께 꽁치 살 토막을 싸먹으면 가시 걱정 없이 잘 넘어간다. 통조림이 아니라 생물이라면 불가능할 일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39. 8000원(2인 이상).
◇ 참치김밥=정김밥. 참치김밥은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으로 불고기를 밀어내고 김밥집의 주력 메뉴로 등극했다. 1980년대 중반 참치캔이 등장하며 단숨에 식탁을 장악했고 또 김밥에 침투(?)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기름기 머금은 참치를 김밥 안에 넣을 생각을 과연 누가 했을까. 이 집 참치김밥은 기름기를 적당히 빼고 다진 참치를 푸짐히 넣어 단골이 많다. 서울 서대문구 수색로 138 1층. 계란김밥 3500원, 멸추김밥 3500원.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