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전임기자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와 관련한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수 지원서에 허위 경력…수상 경력도 거짓’이란 언론 보도가 발단이 됐다. 조국 부인 정경심이 자녀 입시 스펙을 조작해 사달이 났던 일이 떠올랐다. 묘한 기시감이다. 예상했던 대로 여당이 들고 일어났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김의겸은 “김건희의 삶 자체가 완벽한 성형 인생”이라고 힐난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추미애도 “피의자로 수사에 응하라”고 다그쳤다.

사실 김건희의 말과 행동이 준비되지 못했다. “돋보이려고 한 욕심…그것도 죄라면 죄”라고 변명했고, “왜 결혼 전 일을 뒤지느냐”고 따졌다. “학교 진학을 위해 그런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며 여당 내 잠재된 ‘조국 감성’을 헤집기도 했다. 조국 사태 때 문재인 정권과 결별한 평론가 진중권은 김건희와 국민의힘에 “진실게임 말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연예인 추적 전문 매체가 기습적으로 찍은 동영상을 공개한 것도 기름을 부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김건희가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경호원이 다급하게 그의 목덜미를 눌러 빠져나가는 모습이 영 개운찮았다.

윤석열, 이대로는 대선에서 진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 우위의 구도가 많이 좁혀져 이재명과 시소게임을 벌이는 형국이다. 그나마 ‘김건희 리스크’가 반영되지 않은 조사다. 논란이 조기 종식되지 않으면 윤석열이 갈수록 어려워질 수도 있다. 치밀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법적·도덕적 논란을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 “사과할 의향이 있다”거나 “사실 여부를 떠나 사과한다” 등 마지못해 하는 느낌의 사과로는 안 된다.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소명한 뒤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수사를 받고 죄가 있으면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해야 한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는 오히려 독이 된다. 자칫 조국 사태 때 ‘조로남불’로 불렸던 ‘내로남불’이 이제 ‘윤로남불’로 돌아올 수도 있다. 앞으론 후보는 물론 배우자 역시 캠프 내 핵심 그룹과 철저히 ‘조율된 맵(map)’ 위에서 움직이고 말하고 숨 쉬어야 한다.

물론 김건희의 잘못을 정경심의 그것에 비교하는 건 아직은 좀 가혹한 측면이 있다. 정경심은 법원에서 표창장 위조 등 ‘7대 허위 스펙’이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유권자에게 자신의 허물을 사랑의 눈으로만 바라보기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유권자는 사안의 대소(大小)와 경중(輕重)을 구분하지 않는다.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냉정하며 잔인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집권세력은 지지자들 마음 깊이 쟁여진 ‘조국의 빚’을 들춰내고 ‘공정심리’를 자극할 것이다. 이미 적을 향한 증오와 규탄의 목소리, 죽임의 언어가 난사되고 있다.

윤석열은 공인이다. 배우자도 그렇다. 공인의 길은 지옥 길처럼 험난하다. 작금의 모든 사태가 넓은 의미의 후보 검증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두 차례나 거의 당선될 것처럼 보였던 이회창이 패한 데는 ‘가족 리스크’(아들 병역 문제)가 깊이 작용했다. 후보 본인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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