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예스24 -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 기쁨’
6차 공모 大賞 - ‘작별하지 않는다’ 신숙희 씨 선정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지음 | 문학동네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여러 작품을 경유해 마침내 도착한 정거장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채식주의자’의 삼부작 구성과 여성의 몸이 지니는 힘을 고딕적으로 캔버스 위에 터트린 점이나, ‘흰’이 사진이 첨부된 에세이 소설 형식을 띠며 생명과 죽음, 위무에 관한 작가의 내밀한 경험과 철학을 고백한 것, 그리고 ‘희랍어 시간’에서 두 명의 화자가 이중 구도로 서로의 상실을 감싼 점이 교차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전 소설들의 특징들을 최대치로 밀어붙이면서 학살과 고문의 역사(국가 폭력)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소년이 온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소설은 ‘채식주의자’(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처럼 1부 새, 2부 밤, 3부 촛불로 직조된다. 언뜻 보면 성근 눈발처럼 “맥락도 설명도 없이” 흩어지는 구조물 같으나 ‘새’는 서술자가 친구가 머물던 고향 집으로 향하는 이유가 되고, ‘밤’에서는 두 친구가 신비한 꿈의 대화를 펼치다가 ‘촛불’이 꺼지며 그 몽환적인 시간이 종료된다. 밀도 높은 시간을 예리한 통각으로 아로새긴다.
이번 소설의 두드러진 기법은 두 인물 경하와 인선의 데칼코마니 찍기(되기)에 있다. 인선이 키우는 앵무새 한 쌍은 이들의 관계를 상징해 양안시가 안 되는 새의 시선(“두 개의 시야”)을 따라 독자도 고개를 외틀며 장면들을 모아 보게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중 소설가인 경하의 존재론적 위기로부터 출발한다. 극심한 두통과 위경련에 시달리며 자꾸 드러눕는 우울한 상태로 죽음만을 곱씹는다. 붕괴의 중심에는 K시에 대한 소설을 끝내고도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파(거스러미)가 자리하고 있다. 은둔과 근 기아 상태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유서 다시 쓰기에 착수한 그때, 친구의 다급한 호출이 날아든다. “지금 와줄 수 있어?”
암막천이 씌워진 새장 속 새는 경하의 상태를 투영, 그가 새에게 빛과 출구를 제공하는 행위는 기실 자신의 암담함과 정체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인선과의 관계를 톺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럼에도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선선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표면적으로는 새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지만, 인선의 망가진 목소리와 손을 대행하는 묵직한 역할을 부여받는 까닭이다. 의구심과 달리 눈보라와 폭설을 뚫고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추억들이 되살아나며 서로 마주 보게 된다.
소설 전반에 걸쳐 눈과 새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가볍고 부드러운 감촉을 지녔으며 기류를 순환하고 활공한다. 새의 광채 어린 까만 눈은 인선에게, 작은 몸체는 인선의 어머니에게로 침착하게 내려앉는다. 특히 눈의 결정체는 반듯한 기둥과 틈새의 조합으로 ‘결속’하고 응결하는 성질을 지녀, 두 친구의 우정뿐 아니라 인물 강정심(姜正心)의 “밀봉된 말들”을 향해 뻗어나간다. ‘속솜허라’(입 다물라)는 금기와 명령에도 가족의 유해를 찾아 나섰던 정심의 걸음을 비춘다. “엄마를 잘 몰랐어.”
눈은 수증기로 승천했다가 다시 내리고, 파도도 밀려왔다 쓸려간다. 이런 자연의 흐름은 되풀이되는 잔인한 인간사에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맞서는 몸부림이 함께 해왔음을 함축한다. 렌즈 밖에서나마 고향 집의 벽면과 눈의 ‘격벽’을 스크린 삼아 그림자의 일렁임으로라도 끈질기게 역사의 진위를 띄운다. 경하는 제주 여정에서 하염없이 가라앉고 수렁과 갱도와 심해로 빠져들면서 “얼마나 아팠을까?”를 왕왕 메아리치게 한다.
팥죽처럼 엉킨 피비린내 나는 촛농이 흐르는 사이, 인선의 삼면화 작업이 베트남과 만주를 거쳐 제주로 이어지며 지난 4년 동안 경하를 향한 발신음이 계속되었음이 드러난다. “혼자가 아닌데.” “내가 있잖아.” 죽은 새를 정성껏 묻고 냉골에서 잠든 꿈결에, 혼이 날아들어 펄럭이는 제주 4·3 사건(어머니의 물 구경과 아버지의 동굴)은 그들의 공동 프로젝트(위령제)가 결코 중단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경하는 평행우주에서 전해오는 뻐근한 사랑들, 즉 손가락에 피를 내서라도 젖 물리는 생명과 기억을 살리려는 애끓는 마음에 점화돼 간절히 부르짖는다. “아직 사라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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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희(1975년생·떠올렸을 때 웃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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