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합니다 - 홍승표 선배

“조만간 책이 나오는데 한 권 보낼 테니 읽어봐 줘요.”

오랜만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홍승표 선배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주는 거창한 근황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주세요.”

오랜 세월 동안 후배들에게 말과 글로, 행동으로 많은 가르침을 준 공직자였던 터라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곧 나올 테니 읽어보면 알겠지요.”

만남 후, 두 달 만에 그가 책을 보내왔다. ‘얼음장 밑에서도 늘 물은 흐른다’(도서출판 위). 다소 무게감 있는 표제(表題)에 385쪽의 제법 두툼한 책이었다. 평생 자기 이름을 걸고 책 한 권이라도 펴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그는 그동안 6권의 책을 펴냈다. 9급 말단에서 1급까지 40년의 공직생활과 공기업 사장을 지낸 이력을 볼 때 여간 바쁘지 않았을 터이다. 보통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사실, 그의 ‘부캐(부캐릭터)’는 시인이다. 198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기도 했다. 지난 3년간 200여 권의 책을 읽었다니 그 공력 또한 무시 못 할 일이다. 이번 저서에는 그가 살면서 겪은 크고 작은 일화가 담겨 있었다. 고단한 삶이 녹아든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치열한 삶의 농익은 체취와 한결같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인상적인 대목은 경기도청 공무원으로서 반도체 공장 증설에 얽힌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를 방문해 고위 관료들을 설득한 부분이다. 법의 모호한 기준을 내세워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지만 끈질긴 소통과 협의를 통해 허가 약속을 받아냈고 지금의 반도체 공장 증설을 위한 주춧돌을 마련했다. 매사에 공들여 정성껏 일하는 품성을 배울 수 있는 대목이다. 컴퓨터 대신 등사판으로 행정문서를 생산하던 시절, 글씨를 잘 쓴 덕분에 여기저기 불려 다녔던 일화도 흥미로웠다.

그는 누군가를 ‘형’이라 부르는 기준도 명확했다. 나도 많은 지인을 ‘형’이라 부르지만, 단순히 연장자라 그렇게 호칭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야 ‘형’이라고 부른다고 썼다. 나이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매사에 그 호칭을 쓸 때도 공사(公私)는 명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에 그를 만나면 꼭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상도(常道)를 그에게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언행에는 무게감이 있다. 그가 경기도청 공무원들이 해마다 뽑는 ‘함께 일하고 싶은 베스트(best) 공무원’에 네 번 연속 선정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걸 보면 그에게는 분명 존경할 만한 점이 있다.

홍 선배는 책의 마지막에 “누가 다시 태어나면 뭘 하고 싶냐 묻는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힘들어서”라는 것이다. 나 역시 앞으로 인생의 고비를 만날 텐데, 그럴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걱정되기도 한다. 다음번에는 책에서 “오랜 단골”이라고 쓴 90년 된 수원역전 노포 ‘일미집’에서 그 허다한 역경을 이겨낸 비결을 귀동냥하며 소주를 나눠 마시고 싶다.

후배 A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이메일 : phs2000@munhwa.com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