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큰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도시락이다. 도시락은 내용물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것을 담는 용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먼 옛날 점심을 밖에서 먹어야 한다면 요깃거리를 챙기기는 했을 텐데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 주먹밥 한 덩이, 찐 고구마 몇 개 정도를 그저 되는 대로 싸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뱃사람들의 점심거리로 개발됐다는 충무김밥이 여전히 밥과 반찬을 비닐로 둘둘 말아서 포장해 주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상황이 달라졌다. 밖에서 밥을 먹을 일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가볍고 휴대가 편한 ‘벤토’가 소개됐다. 우리에겐 본래 물건과 이름 모두 없었으니 그대로 받아들여 쓰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벤또’ ‘변또’ 등 우리말처럼 변화도 겪었다.
그런데 누군가 대나무나 버드나무로 짜서 음식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든 용기를 가리키는 옛말 ‘도슭’을 찾아냈다. 이것이 변화를 겪어 ‘도시락’이 되고 서서히 벤또를 밀어냈다. 요즘은 벤또란 말을 쓰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영어 ‘런치 박스’나 ‘박스 런치’를 쓰는 이들도 드물다. 우리말에서 일본어의 잔재를 걷어내는 것도 순화지만 그것을 영어로 대체하는 것이 진정한 순화인지는 의문이다. 도시락을 먹을 일은 드물지만 도시락은 늘 맛있다. 벤또나 런치 박스가 아니어서 더 그렇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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