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미국 일리노이주 거니의 쇼핑몰에서 시간당 15달러의 임금을 제공하겠다는 나이키의 구인광고 앞을 한 쇼핑객이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있다. 노동력 부족 사태로 인해 올해 처음으로 저임금 업종에 대한 시간당 임금이 평균 15달러를 돌파했다. EPA 연합뉴스
지난 3일 미국 일리노이주 거니의 쇼핑몰에서 시간당 15달러의 임금을 제공하겠다는 나이키의 구인광고 앞을 한 쇼핑객이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있다. 노동력 부족 사태로 인해 올해 처음으로 저임금 업종에 대한 시간당 임금이 평균 15달러를 돌파했다. EPA 연합뉴스

■ 글로벌 이코노미 - 일할 사람 없는 美

일할 사람이 없어 미국이 난리다. 오죽하면 ‘그레이트 레지그네이션(the Great Resignation)’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이 신조어는 우리말로 하면 ‘대(大)퇴직’이란 의미가 된다. 1930년대 전 세계를 힘들게 했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연상시키는 조어다. 대퇴직은 올여름 이후 서구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경제·사회 용어 가운데 하나가 됐다. 도대체 사람들이 얼마나 그만두길래 대퇴직이란 말이 나왔을까.


팬데믹이후 경제 정상화 조짐
기업·상점 등 긴급 채용 나서

10월 구인 1103만건 되는데
채워진 일자리 650만개 불과

月 최소 2400달러 실업급여
재택종료 육아문제 등도 한몫

50년만의 스벅 노조탄생 등
노동 권익향상 목소리도 커져


◇월간 400만 명, ‘대퇴직 시대’의 도래 = 지난봄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지난 4월 자발적 퇴사자는 400만 명에 육박했다. 백신 보급이 확산하며 미국 경제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을 무렵이었다. 봉쇄가 풀리며 기업과 식당, 숙박업소, 상점 등이 다시 영업활동을 재개하려는데, 복귀를 거부하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정점은 여름이었다. 8월 퇴사자 숫자는 427만 명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0년 12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9월에는 더 높아졌다. 9월 퇴사자는 440만 명을 기록, 8월에 세운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10월에도 자발적 퇴사자는 420만 명에 달했다. 9월과 8월에 이은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수치였다. 미국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11~12월에도 퇴사자 수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면 올해 퇴사자 수가 역대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내다봤다.

퇴사자가 늘면서 일자리는 넘쳐나는 수준이다. 10월 구인 건수는 1103만 건으로 집계됐다. 9월에 비해서도 70만 건의 구인이 더 늘었다. 이는 지난 7월 기록한 사상 최대 기록 1110만 건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중 채워진 일자리는 650만 건에 불과했다. 미국 취업사이트 운영기업 집리크루터의 줄리아 폴록 수석 경제학자는 “구인공고와 취직을 원하는 실직자 수가 이렇게까지 차이 난 적이 없었다”면서 “노동시장이 유례없이 빡빡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퇴직 사태의 원인…실업급여, 조기 은퇴자 발생 = 대퇴직 사태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실업급여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연방정부는 지난 9월까지 주당 300달러(약 35만 원)의 실업급여를 지급해왔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실업자들은 주정부 실업급여 외에 연방정부 실업급여까지 챙기며 주당 최소 600달러, 월간 최소 2400달러의 실업급여를 받아왔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설 동인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조기 은퇴자가 대량으로 발생, 노동시장에 커다란 구멍이 발생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지난해 초 팬데믹 초기부터 올해 8월까지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조기 퇴직을 선택하지 않았을 인구가 약 2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19에 취약한 고령층과 주식·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자산이 불어난 젊은층이 동시에 조기 퇴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재택근무가 풀리는 가운데 육아 문제가 일터 복귀를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에 따른 어린이집 운영 차질로 자녀 양육 부담이 커져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인구조사국 통계를 인용해 “지난 한 달간 5세 미만 자녀가 안전문제로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어려워지면서 무급휴직, 병가, 퇴사를 택한 사람이 700만 명에 달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 노동자들의 반란’이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팬데믹은 미국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고, 과연 이런 형편없는 일자리에 계속 매여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했다”면서 “미국은 부유한 나라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대우를 해 왔고, 특히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보정하면 2019년의 남성 근로자가 일해서 번 돈은 40년 전의 남성 근로자가 벌던 것보다 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동력 부족, 노동자 우위 시장의 형성 = 퇴사자 증가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노동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특히 당장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기업들은 임금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 노동부는 11월 민간 부문 시급이 전년 대비 4.8% 상승했다고 밝혔다. 인상률이 두 달 연속 4%를 넘어섰다. 실제 대형 소매업체 코스트코는 미국 매장 직원 시급을 16달러에서 17달러로 올렸다. 아마존도 시간당 평균 임금을 15달러에서 17달러로 상향했다. 내년 임금도 대폭 오를 전망이다. WSJ에 따르면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가 229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계획한 내년 평균 임금인상률은 3.9%에 달했다. 2008년 이후 가장 큰 인상 폭이다. 나넷 제이컵슨 웰링턴자산운용 글로벌투자전략 담당 전무는 지난 10일 한국투자공사(KIC) 뉴욕지사가 주관한 ‘뉴욕국제금융협의체’에서 “퇴사율이 높아질수록 임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며 “경영진과 근로자 간 힘의 균형에서 팬데믹 이후 근로자가 더 강해지는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노조 설립도 활발하다. 미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50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가 설립된 게 대표적이다. 최근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노조가 설립된 가운데 여러 곳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올해 4월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도 노조 설립 시도가 이뤄지는 등 노조 결성 움직임은 미 산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상태다. 노동자 부족이 극에 달했던 10월에는 파업도 활발하게 일어나 ‘파업의 10월(Striketober)’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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