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의 지식카페 - ⑩ 포인세티아
16세기 멕시코 가난한 소녀가 봉헌, 17세기부터 프란치스코회서 성탄장식으로 사용… 초록잎 베들레헴 별·붉은 포엽 예수의 피 상징
20세기 들어 분홍·주황·연두·크림 등으로 화려한 색상 변신… 잎 등에 약한 독성, 반려동물이 먹으면 구토·설사 유발
야생의 포인세티아는 원래 멕시코와 과테말라 남부의 건조한 열대 숲에 분포한다. 주로 태평양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은 협곡의 가파른 비탈 사면에서 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자란다. 야생의 포인세티아는 키가 4∼5m에 이르고 좁고 길쭉한 잎을 가져 오늘날 보통 꽃시장에서 유통되는 포인세티아와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
원주민들은 이 식물의 선홍색 포엽으로부터 염료를 생산하거나, 하얀 유액을 짜내어 해열제로 사용했다. 1428년 멕시코고원에 수립된 아즈텍 제국에서 이 식물은 쿠에틀락소치틀(Cuetlaxochitl)이라 불렸는데 ‘순수한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소멸되는 필멸의 꽃’이라는 뜻이다.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몬테수마 2세(1480∼1520)는 궁전을 장식하는 데 포인세티아를 쓰기도 했다. 이 시기 아즈텍의 정원은 체계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가꿔졌는데, 다알리아, 백일홍, 메리골드, 코스모스 같은 자생식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열대 식물도 자라고 있었다.
포인세티아가 크리스마스와 관련을 맺게 된 전설의 배경은 16세기 무렵이었다. 그때는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아즈텍 제국이 멸망하고 가톨릭이 그 지역의 주된 종교가 돼가고 있던 시기였다. 한 마을에 페피타(Pepita)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성탄절 미사에 봉헌할 예물을 구할 수 없었다.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선물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건 사랑이 담긴 마음이라는 천사의 메시지에 힘을 얻어 길가의 풀과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부케를 제단에 봉헌했다. 그런데 성탄미사가 열릴 때쯤 기적적으로 그 식물 중 일부가 매우 아름다운 빨간색으로 물이 들었다. 그 식물은 당시 사람들이 쿠에틀락소치틀이라고 불렀던 오늘날의 포인세티아였다.
멕시코 게레로주에 위치한 탁스코(Taxco)라는 작은 마을의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17세기부터 이 식물을 성탄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린 소녀 페피타와 ‘거룩한 성탄 전야의 꽃’에 관한 전설이 이때 크게 부각됐을지도 모르겠다. 포인세티아의 각진 초록색 잎 모양은 베들레헴의 별을 상징하고 포엽의 붉은색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흘린 희생의 피를 의미했다. 이후 크리스마스 전통과 밀접하게 연관된 초록색과 붉은색의 조합이 탄생했고, 이 식물은 오늘날까지도 통용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꽃(flores de Nochebuena)’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식물은 오직 멕시코의 작은 마을과 그들의 전통 안에서만 200년이 넘도록 머물러 있었다.
포인세티아가 더 넓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조엘 로버츠 포인세트(Joel Roberts Poinsett·1779∼1851) 덕택이었다. 열정적인 식물학자이자 의사였던 그는 1825년에서 1829년까지 멕시코로 파견된 첫 번째 미국 공사(minister)였다. 그는 1828년 아름다운 시골 지역인 탁스코 지역을 여행하다가 아주 화려한 붉은 잎을 가진 포인세티아를 발견하고, 살아있는 개체들을 찰스턴에 있는 자신의 집 온실과 필라델피아의 바트람 가든으로 배편을 통해 보냈다.(바트람 가든은 존 바트람에 의해 1728년 필라델피아에 설립된 미국 최초의 식물원이다.) 1829년엔 펜실베이니아 원예 협회(Pennsylvania Horticultural Society·PHS)에서 대중을 위해 개최한 첫 번째 플라워쇼에서 포인세티아가 첫선을 보였다. 목련, 펠라르고늄, 중국에서 온 작약, 아라비아 커피 나무, 서인도 사탕수수 등 사람들이 그전까지 쉽게 보지 못했던 식물들과 함께였다. 그 후 포인세티아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위쪽 잎들이 붉게 물들어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식물로 명성을 얻게 됐다. 특히 스코틀랜드 출신 양묘업자, PHS 사무관이자 전시기획자인 로버트 부이스트(Robert Buist) 경이 포인세티아를 재배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 식물에 대한 좋은 평판이 널리 구축됐다. 그는 1834년 포인세티아를 유럽으로 보낸 주인공이기도 했다. 1836년부터 이 식물은 공식적으로 포인세티아라는 이름으로 유통됐다. 이 식물을 미국에 처음 들여와 할러데이 시즌의 새로운 전통에 불을 붙인 조엘 포인세트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 이름은 워낙 영향력이 컸다. 도입 초창기에는 소수층의 전유물이었던 포인세티아는 점점 대중화의 물살을 타게 됐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20세기 포인세티아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 낼 특별한 가문이 등장했다. 독일 출신의 앨버트 에크(Albert Ecke·1860∼1919)라는 사람이 190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와서 이글록(Eagle Rock) 지방에 농장 사업을 시작했고, 1909년부터는 포인세티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폴 에크(Paul Ecke·1895∼1991)는 접목 기술을 개발해 더 콤팩트하면서도 잎이 많은 포인세티아를 만들어 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포인세티아 화분 재배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해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길거리 가판대에서도 판매했다. 1923년에는 에크 랜치(Ecke Ranch)라는 회사를 설립해 생산량과 유통 범위를 크게 넓혔다.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계한 포인세티아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펼친 사람은 그의 아들 폴 에크 주니어(1925∼2002)였다. 그는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와 ‘밥 호프’(Bob Hope) 같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포인세티아를 홍보했다. 곧 유명한 여성 잡지들에도 포인세티아 사진들이 지면을 채웠다. 포인세티아의 붉은 잎은 연말 시즌 많은 사람에게 따스한 온정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고, 포인세티아는 계속해서 북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품종도 100종이 넘게 개발됐는데, 빨강, 분홍, 주황, 연두, 크림, 하양 등 눈에 확 띄는 여러 가지 환상적인 색상과 잎 모양, 다양한 크기로 즐길 수 있게 됐다. 멕시코 야생에서 자라던 키 크고 엉성한 포인세티아는 다부지고 짱짱한 품종들로 다시 태어났다.
1990년대에는 대학교 연구자들이 자체 연구를 통해 포인세티아 접목 기술을 밝혀냈다. 원래 에크 가문만 알고 있는 비법이었는데 이제 만인에게 알려지게 됐고, 포인세티아 재배는 무한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결국 에크가의 회사는 2012년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종묘 회사에 매각됐지만 오늘날에도 에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포인세티아 유통량은 어마어마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6주 동안 매년 7000만 본 이상의 포인세티아가 판매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포인세티아 화분 하나씩 구입하는 셈인데, 그 판매액은 무려 3000억 원 가까이에 이른다.
포인세티아 이야기는 식물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의 안목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미스소니언협회의 전신이었던 국립과학기술진흥원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했던 조엘 포인세트는 의사이자 정치인으로 매우 화려한 경력과 다른 커다란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인세티아를 미국으로 처음 가져온 사람으로 더 많이 기억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2002년부터 매년 12월 12일을 국가 포인세티아의 날로 지정해서 조엘 포인세트를 추모하고 이 식물에 대한 그의 업적을 기린다.
포인세티아에 대해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우리가 좋아하는 벨벳같이 고운 질감과 눈에 확 띄는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물든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은 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화려한 꽃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포인세티아의 포엽(bract)이고, 실제 꽃은 가운데 아주 작은 크기로 핀다. 이러한 형태의 꽃을 배상꽃차례(cyathium)라고 하는데 포인세티아가 속한 대극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즉 변형된 형태의 잎인 포엽들로 둘러싸인 중심부에 퇴화한 몇 개의 수꽃과 1개 암꽃이 한데 모여 있는 형태다. 포인세티아는 어떻게 겨울만 되면 그렇게 잎이 곱게 물들 수 있을까? 바로 광주기성에 의한 것인데, 포인세티아도 국화처럼 단일성 식물에 속한다. 즉 해가 점점 짧아져야 꽃이 핀다. 포인세티아의 꽃은 보잘것없이 작지만 개화기가 되면 꽃의 주변부를 장식하는 포엽도 가장 아름답고 선명하게 물이 든다. 아마도 꽃가루 매개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포엽이 물들려면 6∼8주 동안 연속적으로 매일매일 14시간 이상의 어둠이 필요하고, 낮에는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색상이 더 선명해진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9월 말쯤 본격적인 단일 처리 과정에 들어가는데,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는 무조건 완전한 어둠 속에 있도록 해준다.
좋은 포인세티아를 고르는 데에는 몇 가지 팁이 있다. 먼저 녹색 잎과 색깔 포엽의 대비가 확실할수록 좋다. 즉 밑에 잎은 진한 녹색이면서 노란 잎이 없어야 하고, 포엽의 색깔은 선명할수록 좋다. 가운데 작은 꽃들은 노랑 꽃가루가 덮인 것보다는 아직 끝부분이 불그스름한 신선한 상태가 좋다. 겨울에 포인세티아는 최대한 밝은 곳에서 직사광선이 아닌 간접광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 온도는 낮에는 20도, 밤에는 15도 정도가 이상적이다. 온도가 높으면 그만큼 최상의 컨디션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진다. 온풍기 바람을 맞는 곳이나 문앞에서 자주 찬바람을 쐬는 위치는 좋지 않으며, 물을 준 후에 받침에 물이 고여 있지 않도록 주의한다.
포인세티아가 속해 있는 대극속 식물의 유액은 대부분 독성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연구 결과 포인세티아는 독성이 그리 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유액의 라텍스 성분이 피부, 눈, 점막에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고 애완동물이 잎을 먹으면 구토나 설사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새롭게 싹트는 설렘과 함께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온다.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빨간색의 아름다운 포인세티아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한 아마도 꽃의 문화사 속에서 조엘 포인세트라는 이름과 그에 얽힌 이야기는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식물이 지닌 능력과 그것이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세심하고 날카로운 안목은 앞으로도 더욱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포인세티아(Euphorbia pulcherrima)
포인세티아의 속명인 에우포르비아(Euphorbia)는 모리타니의 왕 주바 2세의 의사였던 그리스인 에우포르부스(Euphorbus)의 이름에서 유래됐고, 종명인 풀케리마(pulcherrima)는 아름답다는 뜻이다. 멕시코와 아메리카 중부 지역 원산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빨갛게 물드는 화려한 포엽이 특징적이다. 20도 전후의 온도에서 잘 자라며, 10도 밑으로 내려가면 잎이 떨어지며 생육이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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