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뻣뻣하다 말하지 마라, 앞마을엔 불도 못 때고 있으니. 삼베옷 거칠다 말하지 마라, 헐벗은 저들은 그마저 없으니.’ 다산 정약용의 ‘사잠(奢箴)’이란 글로 사치함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쌀밥은 못 먹어도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고, 비단옷은 못 입어도 삼베옷이라도 걸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자신의 상황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늘 불만이고 불평이다. 눈을 잠시 밖으로 돌려보면 자신만 못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처지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생활에 안주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만족하면서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노력하자는 것이다. 늘 투덜대며 불만 가득한 사람에게 무슨 발전이 있겠나?

그리고 우리 주위를 돌아보는 마음 씀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지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능사는 아니다.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사방 백 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하는 널리 알려진 경주 최부자댁 이야기와 가난한 이는 누구든 뒤주에서 쌀을 퍼가게 했던 구례 운조루(雲鳥樓) 주인댁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세는 우리 사회를 맑고 밝게 한다.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아름다운 전통은 언제부터인가 보기 드문 일이 되고 말았다.

예전에는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적지 않게 모이곤 했는데 요즈음은 사정이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닐 텐데 그만큼 삶이 팍팍해서 그런가 보다. 누구를 돕는 것은 여유가 생겼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처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배려요, 나눔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 주변에 보리밥도 못 먹고 삼베옷도 못 입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면 좋지 않겠나?

중동고 교장,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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