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폄훼·안기부 미화…
“시대성 다룰때 책임의식 가져야
충분히 비판하되 폐지주장 과도”
JTBC 드라마 ‘설강화’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18∼19일 2회 방송 이후 방영중지 국민청원이 30만 명을 넘어섰고, 성난 대중의 기세에 놀란 광고협찬사들은 줄줄이 지원을 철회하고 나섰다. 1987년이 시대적 배경인데,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를 미화했다는 지적 때문이다.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드라마 *** 방영중지’ 국민청원이 개시 이틀 만에 30만 명을 넘었다. 제목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방영 전 시놉시스 공개 때 논란이 됐던 드라마’ ‘1회 방송에서 여주인공이 간첩인 남자주인공을 구해준다’는 내용 등이 18일 처음 방송된 ‘설강화’를 가리키고 있다.
JTBC가 최초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대생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정해인)와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영로(지수)의 시대를 거스른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JTBC스튜디오와 드라마하우스가 제작했다. 그러나 1∼2회를 통해 그동안 걱정했던 내용들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러브스토리의 외피를 입었으나 수호는 명문대생이 아니라 남파 간첩이고, 지수는 그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해서 도와준다. 특히 수호를 쫓는 안기부를 너무 근사하게 묘사해 미화의 우려마저 커 보였다. 시청률은 3.9%로 솟았다.
부정적 반응에 이 드라마의 광고 및 협찬사들은 서둘러 지원을 철회했다. 정해인이 모델로 있는 치킨 브랜드 푸라닭은 20일 홈페이지에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 제작사 측에 일체의 제작 지원 철회와 광고 활동 중단을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P&J그룹 넛츠쉐이크도 “주인공이 정해인, 지수라는 이름만 듣고 다소 주의 깊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 민주화 역사를 왜곡했고 안기부를 미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방송이 나간 직후에 접하게 됐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 제작사에 협찬 고지 철회를 요청드렸다”고 공지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 측도 민주화운동이나 안기부를 간첩과 연계시키는 것은 그들의 폭력성에 합리성을 부여해 실제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가해가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업회 측은 “공공재인 전파를 쓰는 방송사가 민주화운동을 향한 국가 폭력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 놀랍다. 당시 시대 상황을 로맨스로 치장하고, 간첩인 주인공과 안기부 추격 장면에 ‘솔아 솔아 푸른 솔아’가 깔리는 것 자체가 왜곡이고 가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체 16부작 중 이제 2회가 방송됐을 뿐인데 역사 왜곡을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담당 연출자인 조현탁 PD는 “1987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군부정권, 대선정국이라는 상황 외에는 가상의 창작물이다. 청춘 남녀의 사랑을 위한 소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창작의 자유가 매번 역사 왜곡 문제에 발목 잡히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도 있다. 아울러 SBS ‘조선구마사’의 전철을 밟는 불행한 사태가 또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조선구마사’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결국 방송 2회 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제작진이 섬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미 시놉시스 유출 때 논란이 됐다면 그때 대중과 소통하며 수정 조치를 해야 했다. 시대성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러나 이렇게 성급한 폐지 주장도 우려된다. 이런 압박이 자기검열이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져 버릴 수 있다. 비판은 충분히 하되 맘에 안 들면 바로 폐지를 강요하는 식의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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