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삼국지)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다. 청나라 중기 역사가인 장학성은 ‘칠실삼허(七實三虛, 칠 할이 사실이고 삼 할이 거짓)’라고 삼국지를 평가했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반대로 사실이 30%, 거짓이 70%라는 설명도 많다. 도원결의, 적벽대전의 연환계 등 유명한 대목은 실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역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면서 거짓을 적절히 섞어 매력적인 스토리를 창조했고, 많은 사람이 사실이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악재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면 삼국지의 능수능란한 이야기 엮기가 떠오른다.
지난 16일 아들 동호 씨의 불법 도박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 후보는 곧바로 “부모로서 자식을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었다”며 사과했다. 숨기지 않고 즉각 사과했다는 점에서 좋은 대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사과문이나 이 후보의 발언을 살펴보면 하나 더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이 후보는 사과문에서 “카드 게임 사이트에 가입해 글을 올린 당사자는 제 아들이 맞다”고 했다. 이튿날 취재진을 만나서는 “1000만 원 이내를 잃은 것 같다. 자금이라고 할 것은 없고 한 번에 몇십만 원씩 찾아서, 사이버 머니라고 하나요”라고 말했다. ‘게임 사이트’ ‘사이버 머니’가 불법 도박을 설명하는 이 후보의 표현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 후보 지지층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미국에서 포커는 스포츠의 일종이라는 ‘설명’이 대세를 이룬다. 김어준 씨는 20일 방송에서 “‘불법 도박이 아니라 홀덤(포커)이다.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을 뿐 많은 사람이 하는, 불법 사이트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합법화되지 않은 것은 불법”이라고 수습하기는 했으나, 지지층의 인식은 분명하다.
동호 씨 사건을 대하는 이 후보의 태도는 조카 살인 사건 변호 문제에서도 비슷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 일가 중 일인이 과거 데이트 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 돼 일가 중 유일한 변호사인 제가 변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며 사과했다. 헤어지자고 한 여자친구와 그 어머니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임에도 이 후보가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두고 사건의 본질을 감추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지층은 당시에도 변호사가 피고인을 변호하는 건 문제가 될 게 없다며 이 후보를 감쌌다. 사건 발생 후 유족이 제대로 사과를 받은 적이 없고, 조카를 변론하며 ‘심신 미약’을 주장한 이 후보가 평소 정신 질환을 사유로 흉악범을 감형하는 데 반대해 왔다는 점은 애써 무시됐다.
이 후보가 의도적으로 사안을 호도하려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지층의 반응을 보면 결과적으로 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대안적 사실’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 후보는 평소 대장동 특혜 의혹, 기본소득 및 국토보유세 도입, 부동산 세제 보완 등에서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말을 바꿔 왔다. 아직 많은 유권자가 이 후보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삼국지식’의 화법이 가진 한계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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