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10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99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서울시와 대립한 가운데, 시의회가 ‘의장이 시장에게 퇴장과 사과를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례안까지 의결하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시는 “시의회가 시 위에 군림하겠다는 뜻”이라며 불쾌한 내색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22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하기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시의회 운영위원회는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이 본회의·위원회 회의에서 허가 없이 발언할 경우 의장·위원장이 발언을 중지하거나 퇴장을 명할 수 있도록 ‘서울특별시의회 기본 조례’를 개정했다. 또 의장·위원장이 해당 공무원에 사과를 명한 후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개정안은 본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 달 13일부터 시행된다.

민주당 소속 김정태 운영위원장은 “지난 9월 본회의 시정 질의 중 오세훈 서울시장이 질의 방식에 항의하며 퇴장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며 “이에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의회에서 발언할 경우 시민 대표인 의회를 존중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3일 시정 질문 도중 이경선 민주당 시의원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관련해 시 간부들에게만 질문한 뒤 자신에게 답변 기회를 주지 않자 이에 반발해 퇴장한 바 있다.

시는 “시장의 발언권을 원천 차단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발언 기회까지 박탈하겠다는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시는 “임기 말 시의회가 시 공무원(행정부) 위에 군림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담은 또 하나의 권위적 대못”이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시 공무원들 사이에선 “전제군주정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김 위원장은 “모든 지방 의회에서 회의 질서 유지 의무는 의원들에게만 있다”며 “선도적인 차원에서 그 의무를 집행부에도 부여하기 위해 이 조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과를 의무화한 것은 공무원이 회의 질서 유지 의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만들어둔 장치”라고 덧붙였다.

이날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최근 시에 3조 원 규모의 ‘코로나19 생존지원금’ 편성을 요구했다. 시는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재정 상태상 액수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오 시장 공약 예산과 ‘서울시 바로세우기’ 관련 예산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로 협상이 필요한 사안이 생긴 셈이다.

시 관계자는 “예산안 조정이 선행돼야 최종 가용재원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며 “무조건 3조 원의 예산을 가져오지 않으면 예산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권승현 기자
권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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