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현의 Deep Read - 집권세력의 ‘新색깔론’
극우 ‘국가보안법’ 악용하듯 극좌 반대파에 新색깔론 들이대는 ‘진보도착증’… 민주화 주도세력이 ‘민주화 대상’으로
이재명은 친일 프레임 구사, 윤석열도 불통 논란… 독재적 관행과 문화적 타성 극복하는 ‘일상의 민주화’ 돼야
하지만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파시즘적 관성이 일상을 지배하면 민주주의는 진전하지 않는다. 586 집권세력은 안으로는 내면화한 규율권력에 젖고, 밖으로는 친일파 프레임과 ‘민족보안법’으로 반대자를 몰아붙이는 신(新) 색깔론에 빠졌다. 대한민국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의 정치문화가 ‘민주화의 대상’이 된 역설을 경험하는 중이다.
◇1987년 체제 후의 민주주의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후보의 정책과 공약들은 민주주의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는 허경영 후보조차도 ‘국회의원 전원을 정신교육대에 입소시키겠다’는 공약만 제외하면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혐의를 찾기 어렵다. 국회의원 정신교육에 찬성하는 2030의 댓글도 적지 않으니, 서슬 퍼런 5공 시대의 ‘삼청교육대’를 모방한 그 공약조차도 반드시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 못 박기도 힘들다. 이재명과 윤석열 등 유력한 여야 대선 후보들도 각각 경제와 정치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잘했다고 인정하는데, 허경영의 공약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나.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래 지금 벌어지고 있는 2022년 대선 레이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정치사가 주는 교훈은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헌법과 제도를 고쳐 정치적 민주화를 수립하는 것을 넘어 훨씬 더 다방면의 노력과 시간을 요구한다. 법과 제도의 배후에서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 집단적 코드를 공유하는 일련의 문화적 타성들, 일상에서 반복되는 습관과 태도 등 구석구석 자리 잡은 독재의 관행들을 직시하고 고쳐나가는 ‘일상의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의 삶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상의 문화를 민주화하는 것은 법·제도를 통한 정치적 민주화보다 훨씬 더 품이 많이 든다. 법과 제도는 정치적 합의에 따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빠른 시간 안에 고칠 수 있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파시즘적 관성들은 이보다 훨씬 완강하기 때문이다. 법·제도를 포함해 사회 구조와 경제 체제, 정당과 사회적 조직원리 등의 민주적 변화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586과 일상적 파시즘
과거엔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현재엔 진보와 자유의 이름으로 정치권력을 잡은 586 집권세력조차 비민주적 일상과 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당내 민주주의와 이견을 억누르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집권세력과 586의 정치문화가 ‘민주화의 대상’이 된 역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586 운동권 출신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우리 안의 파시즘’은 이들이 문재인 정권 들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이후에 나온 오만과 편견이라기보다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부터 배태된 것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이미 당시 학생운동권의 군사주의와 서열주의, 남녀 활동가 사이의 성차별주의적 분업 등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광주 5·18 기념식 전야 운동권 주역들의 룸살롱 음주·폭언 스캔들, 그리고 운동 명망가들의 잇단 성추행·가정폭력 등이 벌어져 신문지면을 장식하게 됐다. 이는 ‘일상적 파시즘’이 586 민주화운동 세대의 일상과 체내에 얼마나 깊이 각인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20여 년 전 ‘우리 안의 파시즘’은 이에 대한 자기 성찰을 통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극우와 내통하는 진보 허무주의’라는 진영론적 반발 때문에 논의가 더 생산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 오늘날 집권세력과 586 운동권의 정치 행태는 일상적 파시즘이 여전히 유효한 문제 제기임을 일깨워 준다.
‘우리 안의 파시즘’은 586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강남좌파에 대한 강북우파의 도덕주의적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강남좌파라는 비판은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환원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식인의 의식은 그가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정해지는 게 아니라, 그가 어느 편에 서기로 했는가 하는 실존적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진행형인 색깔론
일상적 파시즘의 관점에서 볼 때 집권세력에서 보이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토착 왜구와 같은 원색적이고 극좌적인 색깔론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진보 도착증’이라 부를 만하다. 집권세력의 정책을 비판하면 친일파 혹은 민족반역자 등 프레임을 씌우는 이재명 후보도 이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윤석열 캠프 또한 후보에게 직언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불통·줄 세우기 비판을 받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토착왜구론이나 이재명 후보의 친일파 색깔론은 일부 보수 정치인이 벌여온 빨갱이 색깔론과 유사성을 갖는다. 윤석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에 발탁됐다가 짧은 임기를 마감한 노재승류의 구(舊) 색깔론은 친일파 프레임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이재명 캠프의 신(新) 색깔론과 ‘철학적 형제’ 관계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빨갱이로 몰았던 과거 군사권위주의 시절의 국가보안법, 그리고 민족정기를 내세워 역시 반대자를 토착왜구로 내몰아 사냥을 벌인 집권세력의 ‘민족보안법’은 자기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반역의 프레임을 씌운다는 점에서 같은 정치적 문법을 구사한다. 색깔론은 현재진행형이다.
문 정부 들어 586의 친일파 타령은 내용과 정도에 있어 수구세력의 빨갱이 타령을 넘어서는 모습까지 보인다. 집권세력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싶은 게 아니라 민족보안법으로 대체하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친일파 색깔론’이 ‘빨갱이 색깔론’의 청출어람이 되는 날, 한국 민주주의는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
서강대 교수, ‘우리 안의 파시즘’ 저자
■ 세줄 요약
1987년 체제 후의 민주주의 :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음. 행동 양식, 집단적 코드를 공유하는 문화적 타성, 습관과 태도 등 구석구석 자리 잡은 독재적 관행을 극복하는 ‘일상의 민주화’가 필요.
586과 일상적 파시즘 : 과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현재 진보의 이름으로 정치권력을 잡은 586 집권세력조차 비민주적 일상과 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 민주화운동 주도 세력이 ‘민주화의 대상’이 되고 있음.
현재진행형인 색깔론 : 586 집권세력은 안으로는 내면화한 규율권력에 젖고, 밖으로는 친일 프레임과 ‘민족보안법’으로 반대자를 공격하는 신 색깔론에 빠짐. 보수의 구 색깔론과 진보의 신 색깔론은 ‘철학적 형제’ 관계.
■ 용어 설명
‘1987년 체제’란 그해 대통령 단임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헌정체제. 제도적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 변동과 특질을 통칭하는 개념·담론으로 자리 잡음.
‘우리 안의 파시즘’은 자신만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고 여기는 좌파의 도덕적 폭력이 극우 매카시즘과 결을 같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 임지현 교수가 처음 제기해 사회적 담론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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