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란 말은 설거지를 닮았다. 씻을 그릇이 쌓여 있으면 요즘에는 ‘설거지해라’라고 말하지만 세종대왕 시절에는 ‘설엊다’는 동사가 있어 ‘설어저라’라고 했다.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설거지’를 감안하면 본래 ‘설겆다’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이 동사에서 파생된 ‘설겆이’를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알맹이에 해당하는 ‘설겆다’는 말은 없고 껍데기에 해당하는 ‘설거지’만 남아 있었던 것이 문제다.
맞춤법 개정을 하면서 ‘설겆이’라 했던 것을 ‘설거지’로 바꾸었다. 오늘날 ‘설겆다’는 동사가 없는데 여기서 ‘설거지’가 파생됐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추수를 한다는 뜻의 ‘가을걷이’는 ‘걷다’란 말이 여전히 쓰이니 가능하지만 설거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는 오래된 말이니 당연한 결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내내 ‘설겆이’를 잘 써왔는데 왜 ‘설거지’로 바꾸냐는 것이다. 그 과정과 이유를 보면 밑과 끝이 다 있지만 배운 것 혹은 지식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이 규정이 바뀌고 스무 해가 조금 넘은 요즘에는 이리 우기는 이들은 드물다. 세월이 흘러 처음부터 ‘설거지’로 배운 이들이 늘어난 까닭일 것이다. 아니다.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만 한다는 이들이 각성한 것이라 믿고 싶다. 규정이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과 일치돼야 한다고 믿던 이들이 자신의 낡은 생각을 설거지한 결과라 믿고 싶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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