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긴 세월 차곡차곡 쌓인 그리움처럼/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밤/ 님 향한 내 가슴만 속절없이 속절없이 두근두근/ 그대는 아실까 모르실까’. 본명이 이영길인 원로가수 쟈니 리(83)가 지난 6월 발표한 신곡 ‘바보 사랑’ 일부다. 이영만 작사, 강유정 작곡이다. 그의 최대 히트곡은 서영은 작사, 백영진 작곡인 ‘뜨거운 안녕’이다. 1966년 첫 독집 음반에 담은 노래로, ‘또다시 말해 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나란히 손을 잡는 밤’ 하고 시작한다. 독일 출신 가수 니코가 1997년 ‘트로트 팝’ 앨범을 내면서, 영어 가사로 불러 ‘나 여기 있다’는 의미의 제목 ‘Here I am’으로 수록하기도 했다.

쟈니 리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중국 지린에서 연극배우인 중국인 아버지와 기생 출신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를 상하이에서 보냈다. 귀국해 평남 진남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를 데리고 다니기 어려웠던 처지의 어머니는 친정에 맡겼다. 6·25전쟁의 혼란 속에 가족과 생이별한 그는 부산으로 피란해 미군 장교에게 입양됐다. 1958년 상경해서 이듬해에 극단 쇼보트에 들어갔고, 1961년부터 독집 음반을 내기까지 미8군 무대에 섰다. 그의 또 다른 대표곡은 김민용 작사, 길옥윤 작곡인 ‘내일은 해가 뜬다’다. 첫 독집에 담았으나 주목받지 못한 채, 그 뒤로 다른 가수들이 ‘사노라면’ 제목으로 리메이크해 부른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2004년 무렵까지는 ‘구전 민요’ ‘작자 미상(未詳)’ 등 엉뚱한 추측이 따라붙기도 했다. 1974년 돌연 미국으로 갔다가 2년 후 귀국했고, 1978년 다른 예명 이훈으로 재즈 음반을 냈으며, 1980년 하와이로 이민도 갔던 그의 복잡한 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결혼도 5번 했고.

2021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쟈니 리가 식도암 수술을 받고도 기적같이 목소리를 되찾기까지 보였던 불굴의 의지, 그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가수 활동을 하며 신곡까지 내놓은 진취적 자세 등을 새삼 되돌아보게도 하는 연말이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때도 올 테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행복하지 않던가’ 하고 시작해,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한숨일랑 걷어 치고 가슴을 쭉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하고 끝나는 그의 노래도 들으면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