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시인 유우석은 <누실명(陋室銘)>에서 “산이 높다 한들 신선이 살아야 이름을 얻고, 연못이 깊다 한들 용이 있어야 영검하다”며 크기나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재한 것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사물은 내용에 따라 가치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이어 “내 집은 누추하나 나의 향기로운 덕이 있다”고 자긍심을 표현했다. 나라는 존재로 인해 내 집은 이미 누추한 집이 아니다. 제갈량이 살던 띠집을 누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집이 낡고 허름한 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느냐가 중요하지. 집주인이 허접한 사람이라면 집이 제아무리 화려한들 누가 알아주겠나? 세속적인 삶을 초월해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당당하고 떳떳한 정신적인 자세가 돋보인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은 일면식도 없는 당대 최고 부자 변승업에게 거금을 빌리러 간다. 허생은 대뜸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만금을 빌려달라”고 한다. 변승업은 두말없이 돈을 내준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누군지도 모르는 거지 행색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거금을 주느냐고 묻자 변승업은 “남에게 뭔가를 빌리려고 하는 사람은 낯빛이 비굴하고 자기 신용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데 저 사람의 태도를 봐라. 눈빛이 오만하고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당당하지 않으냐? 내가 안 주면 그만이지 주려고 마음먹었는데 이름을 물어 무엇하나?” 허생도 대단하고 변승업도 대단하다. 허생의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가 변승업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살다 보면 비굴해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얻지 못하면 사람 꼴만 우습게 된다. 누추한 집에서 고고한 자세로 자기 처지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당함은 고사하고 누추한 집조차도 구하기 어려우니 세상살이가 참 버겁다.

중동고 교장,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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