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의 대파 대란을 경험한 이들은 늦가을에 대파를 뿌리째 들여놓았을지도 모른다. 더 부지런한 이들은 뿌리를 흙에 묻어두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금세 마르기 마련인 대파의 푸른 잎을 고이 간직해 먹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뿌리 쪽의 탱탱한 흰 속살을 먹겠다는 마련도 아닐 것이다. 이들이 고대하는 것은 샛노랗게, 또는 연둣빛으로 올라오는 움파이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움파는 겨울에 움 속에서 자란 누런 파로 풀이하기도 하고, 베어낸 줄기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파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앞의 뜻이라면 ‘움’은 움막을 뜻하지만 뒤의 뜻이라면 ‘움’은 새싹을 뜻한다. 농촌이 아니면 이런 움을 보기 어려운 시절이 됐으니 요즘은 아무래도 후자의 뜻이 익숙하다. 아니 ‘움’이나 ‘움트다’에서 느껴지는 새싹의 기운이 오롯이 느껴지니 후자의 뜻이 첫 번째 뜻이 돼야 한다고 우기고 싶기도 하다.

식물한테는 땅의 양분과 햇빛이 필수인데 땅에서 뽑아 볕도 잘 안 드는 곳에 둔 파에서 새잎이 자라나는 것이 신기할 법도 하다. 그런데 움파를 키우는 것은 오롯이 대파의 뿌리다. 뿌리에 저장된 양분이 새싹을 돋게 하고 향기로 가득 찬 속을 채워 예쁘게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움파는 겨울에 나기도 하지만 겨울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 계절의 변화를 따지면 봄이 시작이지만 달력을 기준으로 하면 겨울이 한 해의 마지막이자 시작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거둬 둔 파에서 새로운 움이 터서 자란다. 봄의 움은 새해의 대지와 태양의 힘으로 자라지만 움파는 묵은해의 기운으로 자라난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가 되면 묵은해를 떨쳐버리고만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새해의 추운 겨울을 버티는 힘은 묵은해의 뿌리에서 온다. 굳이 떨쳐버리려 애쓸 해가 아닌 안고 가야 할 해다. 그래야 움이 튼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