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 “우리나라는 虎談國”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로 인정
12지 설화 40%가 ‘범이야기’
지명·풍속·예술 곳곳에 등장
‘호환’ 말 속 두려움의 존재서
사악한 기운 막는 수호신으로
“우리나라는 호담국(虎談國)이다. 범 이야기만을 모아 ‘천일야화’ ‘데카메론’ 등 이런 유의 책을 꾸미려는 나라는 세계가 넓다 해도 오직 조선이 있을 뿐이다. 범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 안데르센, 그림형제 등 누구 노릇이든지 다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친일로 기울기 전 언론에 호랑이 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던 육당 최남선이 남긴 글이다. 그의 말처럼 호랑이는 때론 용맹함과 지혜의 상징으로, 때론 인간적이고 친근한 영물로 우리 수천 년 역사 동안 각종 설화와 풍속, 지명 등 일상생활과 문화예술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특히 호환(虎患)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호랑이는 역설적이게도 같은 이유로 민초들에게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각인됐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는 코로나19의 n차 유행이라는 전 세계적 환란 속에 찾아왔다. 6·25전쟁이 터진 1950년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 이른 외환위기의 1998년처럼 또 한 번 찾아온 호랑이의 해에 호랑이가 가진 벽사(피邪)의 기운이 널리 퍼지기를 희구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호담국”=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의 배필 자리를 놓고 호랑이와 곰이 벌인 경쟁에서 곰이 승리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우리 역사와 민속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동물은 단연 호랑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임인년을 맞아 최근 352쪽 분량의 한국민속상징사전 ‘호랑이’를 편찬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호랑이 사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각종 이야기와 그에 얽힌 풍속, 예술작품 등이 많다는 의미다.
실제로 사전에 나오는 다양하고 풍부한 사례를 보면 호랑이가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12지 관련 설화 1283건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 호랑이에 얽힌 설화가 501건으로 약 40%를 차지한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호랑이 관련 기사는 700건이 넘는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원제 ‘Korea and Her Neighbors’)에는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20세기 초반 일제에 의해 사실상 절멸될 때까지 한반도 전역을 무대로 활동한 호랑이의 흔적은 일상의 깊은 곳까지 남았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 호랑이 관련 지명이 389개에 이르는데, 이 중 상당수는 곳곳에서 나타나는 중복 지명이다. 범바위가 가장 많이 쓰인 지명이고, 호암 호동 범골 등도 백두대간이 지나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신부가 시집갈 때 타고 가는 가마 지붕은 호랑이 가죽이나 그 무늬가 그려진 천으로 덮었다. 상여에는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을 묘사한 목각인형이 장식됐고,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는 돌호랑이가 진묘수로 세워졌다. 어린아이에게는 호랑이 얼굴을 형상화한 호건(虎巾)을 씌웠고, 여성들은 호랑이 발톱 모양 노리개를 지녔다. 까치와 호랑이, 소나무가 등장하는 작호도(鵲虎圖)는 민화를 대표한다고 할 정도로 많다. 굿에 쓰인 산신도나 사찰 벽화 등에도 호랑이는 단골로 등장한다.
◇두려움의 존재 넘어 벽사의 상징으로=우리 민속에서 호랑이의 이미지는 하나로 정리하기 어렵다. 가장 뿌리 깊은 것은 호환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공포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수령이 제거해야 할 세 가지 악으로 도적과 귀신무리, 호랑이를 꼽았다. 정연식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민속박물관 주최로 열린 ‘용맹함과 해학, 두려움의 상징, 호랑이’ 학술강연회 발표에서 조선 시대 호환의 심각성을 전했다. 1401∼1402년 경상도에서만 수백 명이 사망했고, 1734년 여름∼가을 전국적으로 140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도 한양에서도 인왕산 응봉산 남산 살곶이 아현 청파 등에 호랑이가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심지어 궁궐도 예외지역이 아니었다. ‘태종실록’에는 1405년 경복궁 근정전 뜰에, ‘세조실록’에는 1465년 창덕궁 후원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선조실록’에는 1607년 어미 호랑이가 창덕궁 안에서 새끼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심각한 호환을 막기 위해 호랑이를 잡는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이름의 특수부대가 운영된 사실이 ‘태종실록’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민초들은 호랑이를 두려움의 존재로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호랑이를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중영웅(山中英雄) 등 사악한 기운을 막고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삼재를 막기 위한 호랑이 부적, 호랑이가 등장하는 각종 산신도와 민화, 호랑이를 형상화한 일상생활용품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각종 설화와 전설에서는 호랑이가 용맹의 상징과는 거리가 먼 어리숙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하면 효(孝)의 관념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창식 세명대 미디어문화학부 교수는 “공포에만 사로잡혀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으니 사람들이 호랑이를 바람직한 삶을 이끄는 존재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변형이 있었기에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호랑이가 올림픽 마스코트 등 각종 친근한 상징으로 남았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의로운 호랑이를 기리는 강원 영월 의호총(호랑이무덤)과 호랑이 관련 제사 등의 사례를 들며 “사나운 동물을 이렇게 대하는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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