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 - 고승범 금융위원장
기재부·금융위·韓銀 모두 거쳐
정책·거시경제 정통엘리트 평가
저축銀부동산PF 등 도맡아 해결
의견조율 뛰어나 비둘기파 예상
금통위 시절 ‘매파 본색’ 드러내
가상화폐·빅테크진출 등 변화 때
동일기능·동일 규제 일관성 유지
금융개혁 질서 잡는 데 크게 기여
“금융위원회의 정책과 한국은행의 거시경제를 두루 섭렵한 ‘정통 엘리트’.”
지난 8월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에 대한 금융계의 평가다. 정부나 학계, 금융권 전반에서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기획재정부, 금융위, 한은을 모두 거쳐 현안을 꿰고 있다”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인데 밖에서는 여러 갈등 현안에 의견조율 능력이 뛰어나고, 조직관리에서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학구적이고 합리적이다” 등이다. 다만 취임한 직후 3일 현재까지 4개월여 동안 강한 어조의 새 별명도 늘어나고 있다. “매파 본색” “가계부채의 저승사자”가 대표적이다. 급격하게 늘어난 가계부채 문제의 ‘소방수’ 역할을 떠안게 되면서 생겼다.
◇ 일부 비판에도 일관된 정책 밀어붙여 = 고 위원장은 금융위원회의 다양한 보직을 거치며 가계대출 관리와 카드사, 저축은행 부실 대응에 대한 해결을 주도했다. ‘금융 리스크’를 오래전부터 최일선에서 담당해온 셈이다. 최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금융불균형 문제로 부상한 가계부채 관리를 뚝심 있게 이어갈 최적임자인 셈이다. 고 위원장이 그동안 겪은 금융 리스크는 단어만 얘기해도 누구나 기억할 만한 굵직한 것들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현재의 금융위 금융정책국에 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과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 사태 해결에 매달려야 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현재는 금융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 부채관리방안이 당시 고 위원장의 손을 거쳐 도입됐다. 이때의 경험으로 고 위원장이 금융불균형의 위험을 크게 인식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 여파로 발생한 저축은행 부실사태도 고 위원장의 업무 추진 방식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있다. 고 위원장은 2010년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을 역임할 당시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를 수술대에 올린 뒤 과감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했다. 공적자금 2조8000억 원을 들인 대대적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이후 비슷한 부실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 방안을 도입했다. 가계부채가 한 업권 전체의 위기로 번지고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고 위원장의 매파적 시각이 형성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매파로 변신한 ‘미스터 소수의견’ = 고 위원장의 이런 ‘매파’ 성향은 평소의 온화한 모습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비둘기파’에 가까울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비둘기파는 데이터에 입각한 냉정한 판단보다는 정무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를 잠시 떠나 금융통화위원에 추천됐을 당시 주변에서는 고 위원장이 금융위 입장을 더 대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는 금융위 출신 두 번째 금통위원이기도 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고 위원장은 금통위 시절 ‘매파’ 본색을 한껏 드러내며 소신을 밀어붙였다. 한은에서 고 위원장은 대표적인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로 평가받는다. 2016년 각종 경제지표와 금융지표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들던 그는 2018년 10월부터 공개석상에서 매파로 부상했다. 당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1.50%로 동결했는데, 고 위원장은 이일형 위원과 1.75%로의 인상을 주장했다. 금통위원 중 단 2명. 소수의견의 시작이다. 당시 다소 가파른 금리 인상 주장은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그의 우려 때문이었다. 유독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의 경고는 2021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났다. 오랫동안 유지된 저금리 상황에서 대출자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섰고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는 상황에 처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침체에 대응해 정부가 풀어댄 지원금은 시중유동성을 더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고 위원장은 지난 7월 ‘나 홀로’ 금리 인상을 주장하며 ‘미스터 소수의견’의 대표주자가 됐다. 이주열 한은 총재를 비롯한 집행부는 고 위원장 덕분에 매파 기조를 부담 없이 가져갈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짐을 짊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듯 고 위원장은 금통위 사임 당시 “46번의 통화정책 방향 결정회의 중 한 번도 수월한 결정은 없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고 위원장이 이런 뚝심을 밀어붙일 수 있던 배경으로 한은과의 긴 인연을 꼽는다. 고 위원장은 5년 4개월간 금통위원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공직생활 내내 한은과 합을 맞춰왔다. 그는 “한은은 그야말로 31년 공직생활의 대부분 기간에 저와 밀접한 업무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 변화 물결 속 흔들리지 않는 지표 역할 = 가계부채 해결 외에도 고 위원장이 감당해야 할 일은 급증하고 있다. 가상화폐의 등장, 빅테크들의 금융산업 진출, 신생 핀테크 업체의 등장 등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금융환경이 도래하고 있다. 그에 따른 금융당국의 ‘방향 설정’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고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도 특유의 무게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무기는 ‘원칙’이다. 신규 금융사업자에 대한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은 고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줄곧 견지하고 있다. 고 위원장은 “빅테크 금융산업 진출은 디지털 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것이 제대로 발현되려면 기존 규제와의 규제 상충·공백을 공정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조는 지난달 금융플랫폼 기업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도 재확인됐다.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동일기능·동일규제 및 소비자보호 원칙이 지켜지는 가운데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고 위원장이 정책 추진에 있어 일관된 원칙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급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고 위원장이 금융 혁신 과정에 안정적 정책을 수행하는 배경에는 ‘금융구조개혁 태스크포스(TF)’ 경력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금융구조개혁TF는 금융권 종사자들이 금융업 개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규제완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실행 방안을 연구하는 조직이었다. 이 시기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빅데이터 기반 금융 활성화 등 현재 주목받고 있는 금융개혁의 초석이 다져졌다. 고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금융 혁신의 기초체력을 키운 격이다. 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가상화폐 사업자 규제와 관련해서도 ‘정면돌파’할 기세다. 지난해 9월 24일 특정금융정보법 유예기간 종료에 맞춰 가상화폐 거래소 일부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그는 정해진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 업계에서는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가 미치고 거래소가 줄폐쇄되는 등 혼란을 우려했지만 실제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고 위원장은 특금법 발효 이후에도 “가상화폐 상장과 폐지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신시장의 질서를 잡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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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출생
경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아메리칸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28회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금융정책국장·사무처장·상임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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