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천주교 대주교가 광주대교구청 뜰에서 “대선의 본질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머슴을 뽑는 것”이라며 “각 정치 진영은 권력 쟁취에만 집착하는 퇴행적 비난전을 자제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주교 오른쪽으로 동방박사 상이 보이는데, 그는 “방역 지침을 지키자는 의미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가 광주대교구청 뜰에서 “대선의 본질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머슴을 뽑는 것”이라며 “각 정치 진영은 권력 쟁취에만 집착하는 퇴행적 비난전을 자제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주교 오른쪽으로 동방박사 상이 보이는데, 그는 “방역 지침을 지키자는 의미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 - ① 김희중 대주교

남 이기는 것만 신경 쓰는 사회
비호감 후보들 득세 상황 불러
품격있는 삶의 지혜 가르치는지
가정·학교·사회 모두 돌아봐야

정치는 대화의 기술 넘어 예술
다양한 의견 최대공통분모 찾아
오케스트라 같은 화음 냈으면

시민들, 정치혐오 빠지지 말고
공약 이행 여부에 눈 부릅떠야
안 지킨 정치인 반드시 심판을


인터뷰 = 장재선 선임기자

“정치는 대화의 기술을 넘어서 예술입니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조화시켜서 최대 공통분모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이 화음을 만드는 오케스트라처럼 다른 의견들을 존중하며 대화의 예술을 펼치는 것이 정치가의 몫입니다.”

한국 종교계 대표적 지도자인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는 문화일보 인터뷰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에서 이번 선거가 정치 진영 간 퇴행적 비난전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은 대화 문화의 미성숙 탓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정책, 제안의 가치를 무조건 틀린 것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묻지마’ 반대를 하면서 서로 감정적 앙금이 더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으로서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이기도 한 김 대주교는 다름이 곧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진정한 대화가 이뤄진다고 했다. 그는 정치 세력이 진영 대결을 하는 것은 당연하며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서로의 정책을 검증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처럼 과도한 진영 대결은 차기 정권의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누가 승리를 해도 박수를 쳐 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스포츠 경기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배웠으면 합니다. ‘페어플레이 없는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쟁자들 간에 규칙을 준수하고 주심의 결정에 승복하며 상대방과 관중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 정신입니다. 경기가 끝나 승패가 갈리면 모두가 축하해주시고 격려하지요. 그런 모습이 우리 정치에서도 정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 대주교는 대선의 본질이 개인의 영달이나 소속 정당을 위한 힘겨루기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한 머슴을 뽑는 일임을 자각해주길 각 후보와 캠프에 당부했다. “머슴이 되고자 하는 이는 주인인 국민에게 충성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이번 대선이 ‘비호감 선거’로 불릴 만큼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투표에 참가해서 심판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눈을 감지 않고 똑바로 견제해야 대선 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의 수준이 나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정치만큼 인간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으니 모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오셨습니다. 정치 혐오에 빠지지 않고 각자 신앙적 기준을 갖고 윤리, 도덕적 판단을 해야 정치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김 대주교는 세상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이번 대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선도국가는 경제적 지표가 비교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그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사회적 약자가 정책적 배려를 받는 나라이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정신문화가 물신주의를 선도하는 것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돼야 한다고 그는 제안했다.

“20세기 후반에 선진국을 눈앞에 둔 동양의 어떤 나라에 대해 서방에서 ‘경제동물’이라고 표현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 수치스러운 비판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향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세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철학의 빈곤이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윤리, 도덕, 양심을 지키며 품격 있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적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어 편안하게 사냐를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부모가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취직 잘하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취직이 안 되는 탓에 각 대학에서 인문학과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철학이 없는 나라’를 조장하는 것이다. 국가 정책이 기술 교육에만 치중하지 말고 그 기술을 선용하는 지혜를 배우는 인문학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주교의 생각이다.

그는 삶의 가치 기준이 돈으로만 돼 있을 때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의 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남을 이기는 것만 신경 쓰는 사회인 탓에 현재처럼 ‘비호감 대선’ 후보들이 득세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가정도, 학교도 후세대에게 윤리, 도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회 공동체의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언론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와의 나눔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도덕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도 또 하나의 시대 정신이라고 했다.

“작년에 해외에 계신 교민으로부터 우리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인들의 국내 정착을 허가한 것이 참 자랑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게 국제 뉴스로 보도되었을 때 참 뿌듯했다는 거예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도운 아프간인 300여 명에 대해 특별 기여자 신분을 부여해 국내 입국을 허락하고 정착을 도운 것이 바람직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장차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MZ세대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그들의 창의력을 높여서 꿈과 희망 쪽으로 끌어올 수 있는 정책도 나왔으면 합니다.”

그는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덕목으로 마음이 따스한 사람을 꼽았다. 국민을 차별 없이 존중하고 사회적 소외 계층을 정성스럽게 배려할 줄 알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 정신과 철학을 존중하고 실현하는 의지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김 대주교는 우리 정치 수준을 높이려면 시민의 감시 기능이 더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 후 약속 지키지 않으면 다음에 뽑지 않는 것으로 호되게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리니 정치인 수준이 낮은 겁니다. 공약에 대해 정확히 분석하고, 단순히 감성적 비난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이 돼야 합니다.”

광주대교구가 ‘정치시민학교’를 올해부터 운영하려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실정치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비판력을 높이고 구체적 대안을 꾀하려는 것이다. 김 대주교는 “종교와 정치는 구별돼야 하기 때문에 교회는 정치판에 깊이 들어가지 않아야 하지만, 사람들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에 대해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위기와 관련, 생태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문명을 독점하며 야생 동물의 생존권을 해치면 결국 인간 세상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교훈을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 우리 집안만, 우리나라만 방역해서는 안 되고 세계가 함께 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구촌 모두가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이 보여줬던 대동정신,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인데요, 공동체성을 회복해 나눔을 확산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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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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