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결산과 전망 ① 대선·정치

최대 변수 2030·중도, 변화 메시지와 ‘돈·일·집’ 체감 정책 갈망… 안철수, “단일화 ‘ㄷ’자도 생각 안해”
후보 사법리스크·네거티브 이전투구로 강력한 ‘대선 트라우마’ 만연… 선거 뒤에도 한국사회 화해·통합 쉽지 않아


지난해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한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유권자는 강력한 ‘트라우마’에 빠졌다. 거대 정당 후보들의 품위 없는 처신, 자질을 의심케 하는 실언과 막말, 지도력 부재가 그렇게 만들었다. 유례를 찾기 힘든 비호감도, 본인·가족 리스크와 이를 대하는 태도 등이 정치에 대한 국민적 환멸을 깊게 했다. 대선 이후 몇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치세(治世)의 지도자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 사회 분열을 치유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 정치 대격변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대선은 ‘중도’의 표심에 운명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이재명-윤석열 등 선두 주자들에게는 외연 확장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면서, 중도주의자 안철수에게 제휴의 손짓을 하도록 안내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철수는 분명한 ‘안철수의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단일화론에 대해서도 ‘전략적 거부’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최대 변수는 중도 표심

대선 변수 중 큰 것 몇 가지를 꼽는다면 중도 표심, 박근혜 사면, 북풍, 그리고 후보단일화론의 향배를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중도 표심이다. 이념적 중도층, 정치적 무당파, 연령대로는 2030에 속하는 이들이 중도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중도는 보수나 진보에 비해 ‘차악(次惡) 선택의 불가피성’을 거부하는 심리가 강하다. 투표 막판에 몰려도 표의 양극화를 거부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류다.

중도는 진영논리에서 자유롭고, 새것에 대한 갈망이 크며, 변화의 메시지에 민감하면서도, 실리에 따라 표를 행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포퓰리즘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돈(money)·일(job)·집(house)’과 관련해 ‘내 주머니를 채우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를 지지할 의사가 강하다. 앞으로 60일 남짓 남은 대선은 살아 움직이는 ‘중도 유동성’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거꾸로 이들을 겨냥한 ‘제3지대’ 대선 주자들의 소구력이 중요해졌다는 말과 통한다.

지난해 말 전격 사면된 박근혜와의 관계 설정도 대선 변수로 꼽힌다. 특히 윤석열과 국민의힘 캠프에 박근혜 변수는 애매하게 다가온다. 노골적으로 다가서자니 중도층 눈치가 보이고, 모른 척하자니 태극기 보수세력의 이탈이 우려된다. 박근혜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선거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북풍’ 또한 중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7년 청와대가 집권여당 대선 후보인 이회창 지지율을 높이려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했던 ‘총풍’ 사건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는 3·9 대선에서도 김정은 정권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남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선거 직전에 총풍·북풍 등으로 대선판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후보단일화론의 향배

후보단일화론은 대선 정국의 최대 변수가 될 수도, 허수로 끝날 수도 있다. 우리 선거사에서 대선 후보가 결정된 후 등장했던 후보교체론은 대부분 여러 숙성과정을 거쳐 후보단일화론으로 재탄생했다. 2002년 집권여당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에 대한 후보교체론이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론으로 정리됐던 사례가 있다.

현시점에서 일어나는 단일화론은 여전히 예측 불허의 중도 유동성 때문에 복잡한 셈법에 둘러싸여 있다. 이재명 측은 제3의 후보들에게 ‘통합정부론’을 제시하며 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지지율 급락을 겪는 윤석열 쪽은 단일화가 다급하다.

이·윤 두 후보의 단일화 타깃은 두말할 것 없이 안철수를 향하고 있다. 최근 10%를 찍으며 지지율 상승가도를 달리는 안철수와의 단일화는 ‘승세 굳히기’(이재명)나 ‘전세 역전’(윤석열)의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안철수 머릿속에 단일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기자에게 “후보 단일화의 ‘ㄷ’ 자, 야권 통합의 ‘ㅌ’ 자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철수는 이·윤 캠프에서 꺼내는 단일화론은 거대 정당 후보들을 위해 희생하라는 주문과 다름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는 ‘안철수의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윤석열 캠프에서도 섣부른 단일화론이 불러올지 모르는 역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캠프 핵심 인사는 “현시점에서 단일화 얘기를 꺼내는 건 (안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두 후보가 모두 경쟁력을 가질 때 단일화 논의가 비로소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권의 한 원로는 “인내하고 때를 기다리는 ‘전략적 침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선 시나리오

앞으로 펼쳐질 대선 시나리오는 4자대결, 양자대결, 3자대결로 압축된다.

4자대결은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이 완주하는 구도다. 보수와 진보가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으로 선거를 치른 13대 대선(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재현이고, 19대 대선(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때와도 유사한 대결 구도다. ‘again 1987’이든 ‘again 2017’이든 40% 전후 득표로 100%의 권력을 갖는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다.

양자대결은 보수와 진보 진영의 유력 주자가 1 대 1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는 경우다. 박근혜-문재인이 겨뤘던 18대 대선의 재현, ‘again 2012’이다.

3자대결은 보수와 진보 중 한 진영만 분열돼 대선까지 가는 케이스다. ‘이재명-윤석열-안철수’ 혹은 ‘이재명-윤석열-심상정’ 대결 구도를 예상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again 1997’, 즉 15대 대선(김대중-이회창-이인제)을 전범으로 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선 후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어떻게 될까. 후보들의 계속되는 사법 리스크, 증오와 앙심이 불러낸 이전투구 네거티브전(戰), 진영 간의 생사를 건 승인투쟁이라는 관성은 누가 대권을 거머쥔다 해도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화해와 통합의 길을 마련하기 어렵게 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 변동의 필연성

집권세력 내 비주류 출신인 이재명은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라 했다. 국민의힘과 ‘부득이’ 인연을 맺게 된 윤석열은 집권 후 정계개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안철수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했다. 결국 대선 후 정치 변동은 필연적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보는 재편성되고, 보수는 재구성되며, 정치는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최대 변수는 중도 표심: 대선 변수로 중도 표심, 박근혜 사면, 북풍, 후보단일화론을 들 수 있음. 가장 중요한 건 중도 유동성. 중도는 변화의 메시지에 민감하면서도, ‘돈·일·집’ 관련 실리에 따라 표를 행사하는 특징을 보임.

후보단일화론의 향배: 단일화론은 대선 정국 최대 변수가 될 수도, 허수가 될 수도 있어. 李·尹의 단일화 타깃은 안철수. 그러나 安은 타 후보 승리를 위한 도구가 되길 거부하고 ‘안철수의 시간’을 기다리며 ‘전략적 거부’ 중.

정치 변동의 필연성: 대선 시나리오는 4자대결, 양자대결, 3자대결로 압축됨. 하지만 후보들 사법 리스크, 네거티브전(戰) 등으로 한국사회의 근본적 화해와 통합은 어려울 듯. 누가 되든 대선 후 정치 변동은 필연적.

■ 용어 설명

‘총풍’은 1997년 15대 대선 전 청와대 인사들이 여당 후보 이회창의 지지율을 높이려 중국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휴전선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사건. 관련 인사들이 기소돼 사법 처리됨.

‘전략적’이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장기 책략이란 뜻을 함축. 외교에서 ‘전략적 인내’는 외교전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 참고 견디는 것. ‘전략적 거부’ 역시 승리를 위해 회피한다는 뜻이 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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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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