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송화분분 12세의 자화상, 180×220㎝, 혼합재료에 먹과채색.
김병종, 송화분분 12세의 자화상, 180×220㎝, 혼합재료에 먹과채색.


■ 김병종의 시화기행 - (101) 카피톨리니 박물관

‘1세기 무렵 제작’ 청동 소년상
보는 순간 반가사유상 떠올라
아직 덜 여문 인체, 동선 따라
절묘하게 표현된 형상에 감탄

반라의 여신상 계량적이지만
‘가시 소년상’은 無목적·無化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는 이름의 중국 요리가 있다. 호사함이 극한 대연회식이다. 사흘에 걸쳐 계속되고 100가지 이상의 온갖 진귀한 요리가 나온다고 한다. 먹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어서 반은 혀로 반은 눈으로 먹어야 한단다.

이탈리아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순례하다 보면 마치 탐미의 만한전석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최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바티칸 미술관과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만 하더라도 작심하고 며칠은 봐야 할 정도다. 그런데 그 미의 성찬들의 시작이 바로 카피톨리니 박물관(Museo Capitolini)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로마의 태 자리에 해당하는 카피톨리노 언덕 위의 이 박물관은 화려하진 않지만 다분히 상징적이다. 박물관이 제국의 시대에 ‘세계의 머리’라고 불린 언덕의 옛 궁전이었으니 로마의 머리에 씌워진 관(冠)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광장과 그곳으로 오르는 계단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솜씨라고 했다. 시각적 착시 효과를 활용해 마치 산책로처럼 근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광장에는 로마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청동 복제 기마상이 서 있다. 문무를 겸비했던 그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이기도 했는데 전장에서 틈틈이 그리스어로 써내려갔다는 ‘명상록’은 오늘날까지도 읽히고 있다.

그런데 이 기마상은 본디 시가지 남쪽의 성 조반니 성당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것으로 착각한 후대 사람들이 신성한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옮겨와 로마를 굽어보도록 했다고 한다. 카피톨리니 박물관은 2개의 궁전, 누오보와 콘세르바토를 지하통로로 연결시켜 조성했는데 고대 로마 미술의 학습장이라 할 만한 곳이고 분위기도 마치 교실 같은 느낌이다. 에콜 데 보자르에 연속 낙방한 오귀스트 로댕도 이곳에 와서 절치부심 고전을 배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김병종 작가가 청동조각상 ‘가시를 뽑는 소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병종 작가가 청동조각상 ‘가시를 뽑는 소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문제적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흉상이 보이고 그 대각선으로는 반쯤 누운 디오니소스가 남성미를 십분 발휘한다. 군사대국 로마는 내심 그리스의 인문 정신과 예술을 흠모했던 듯 그리스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주는 흉상과 전신상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회화관에는 불세출의 천재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있는데 아직 살인을 저지르고 로마를 빠져나가기 전의 것들인 듯 특유의 극적 연출이 아닌 화평하고 로맨틱한 경향이 보인다. 벽화 중에는 우리의 고구려 벽화와 비슷하게 호랑이가 흰말의 등을 물고 있는 그림도 있어 눈길을 끌지만, 이 미술관에서 내 발길을 오래 멈추게 한 것은 단연 발의 가시를 뽑고 있는 청동 소년상이었다. 1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각상을 보는 순간 나는 우리의 반가사유상이 떠오르며 아! 싶었다. 몸의 이완과 여유, 부드러움 혹은 평화가 거의 종교적 차원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돼 있는 느낌이었다. 아직 덜 여문 인체가 원형으로 말리는 동선을 따라 절묘하게 표현된 형상. 마치 자궁 속에서 웅크린 모습이다. 갑자기 왁자지껄, 아이들이 몰려오더니 바로 그 앞에 모여서 청동 조각상을 만지고 킥킥거리며 소란하다. 저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데 제어하는 도슨트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발바닥 가시를 뽑는 조각상의 아이가 일어나 그들 속에 섞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나자 그중의 하나가 다시 조각상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그만큼 생생하다.

이어령 선생의 미발표 연작시 ‘눈물 한 방울’에 ‘발톱을 깎으며’라는 것이 있다. 어느 날 노인이 방에서 자신의 발톱을 깎다가 무심코 새끼발가락의 발톱을 보며 툭, 눈물 한 방울을 떨군다. 오랜 세월 자신과 함께 먼 길을 걸어 왔지만 그 존재를 잊곤 했던 새끼발가락 끝에 달린 발톱을 보며 생의 끝자락에 선 노인이 연민의 눈물 한 방울을 떨구는 것이다. 너 아직 거기 달려 나와 함께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연민의 눈물 한 방울인 것이다. 선생의 청을 받아 이 시를 그림으로 그린 바 있는데, 그때 그이는 자궁 속에 웅크린 최초의 인간에 대해 얘기하면서 바로 ‘가시를 뽑는 소년’을 예로 들었다. 그 자세야말로 확산이 아닌 응축의 미학을 보여주는 원형적 아름다움이라고. 예컨대 말 탄 황제나 활 쏘는 장군 혹은 치렁치렁한 의상을 늘어뜨린 반라의 여신 같은 확산형 형태는 비례나 그에 따른 힘의 배분이 다분히 수학적이고 계량적이다. 그러나 ‘가시를 뽑는 소년’처럼 거의 무목적이고 무화(無化)된 행위, 그렇게 하여 형태의 해방과 정신화에 이르는 조형은 다르다. 우리의 ‘반가사유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유’하기 위한 목적성으로부터 자유롭고 그런 면에서 근육질의 남자가 턱을 괴고 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는 서로 그 궤를 달리한다. 도대체 까마득한 이 천년 전에 이름 없는 조각가는 어떻게 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감탄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햇빛 쏟아지는 미술관의 마당으로 나오니 조금 전 몰려다니던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나란히 한쪽에 앉아 있다. 그 앞을 지나오면서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중에 ‘가시를 뽑는 소년’도 섞여 있을 것만 같아서.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카피톨리니 소장 작품은…

‘늑대 젖…’ 청동 조각상 유명
고대 프레스코 벽화들도 즐비


세계 최고(最古)의 박물관 중 하나인 카피톨리니 박물관에는 로마의 건국 신화를 알리는 ‘늑대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청동 조각상이 있다. 벽면의 고대 프레스코 벽화들도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며 특히 지하의 문자판과 석관의 부조들 역시 인류의 보고라 할 만하다. 회화 전시실에는 카라바조 등의 작품들이 있는데 청동 조각상 ‘가시를 뽑는 소년’은 명작 중의 명작으로 꼽힌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