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동네 미용실에 들러 머리커트도 하고 염색도 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은 어쩌지 못한다고 머리카락 색깔이 점점 더 하얗게 돼 갑니다. 머리카락은 원래 흰색이 원형이라는 데 위안을 삼아봅니다. 흰색에 검은색의 멜라닌 색소가 입혀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 검은색을 덧칠하게 됩니다. 한번 칠해놓으니 습관처럼 반복해서 칠하게 됩니다. 성형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번 하면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중독 같은 겁니다. 성형외과 하는 친구 녀석이 밥 벌어 먹고사는 이유라고 하는 것이 실감 납니다.
머리 커트와 염색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합니다. 머리가 반 곱슬머리여서 조금만 길어도 지저분해 보이고 염색한 귀밑머리부터 하얗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도 그런 이유로 동네 미용실 의자에 앉았습니다.
커트를 마치고 염색을 하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제가 앉은 의자 너머 두 번째 의자에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총각이 들어와 안내를 받고 앉습니다. “머리를 짧게 깎아달라”는 것이 주문입니다. 거울 너머로 보니 요즘 학생들이 하고 다니는 머리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미용사가 묻습니다.
“어느 정도로 짧게 깎을까요? 밑을 돌려쳐 드릴까요?”
학생 왈 “아니요. 가장 짧게 깎으면 어떻게 깎을 수 있나요?”
일순간 미용사가 당황합니다. 짧다는 길이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지 않은 겁니다.
“빡빡 깎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제야 학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파가 됩니다.
그렇다고 외모로 보건대, 불량 학생 같진 않아 보입니다. 미용실에 들어와서 행동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범생이임이 틀림없습니다. 미용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습니다.
“왜 빡빡 깎아 달라고 그러는데?”
학생 왈 “고3인데 공부 더 하려고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제 머리를 염색하던 원장과 저는 거울을 마주하고 눈을 마주쳤습니다.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험한 세상을 넘어온 세월의 경험으로 인해 학생의 고민과 결의를 읽어내기에 그 한마디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10일이 대학 수능시험 성적 통지일이었습니다.
미용사가 살살 달랩니다. “빡빡 깎지는 말고 최대한 짧게 깎아 줄 테니까 염려하지 마라”며 전기이발기로 깎기 시작합니다. 제 머리를 염색하던 원장이 고등학교 시절 눈썹까지 밀고 공부하던 친구들이 있었다고 한마디 합니다. 제 주변에는 머리를 밀고 공부할 만큼 독한 녀석은 없었습니다. 가끔 학교에 백호로 밀고 오는 녀석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공부의 의지가 아니고 그저 반항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리캉으로 짧게 깎는 머리라 금방 윙윙거리며 끝납니다. 짧아진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던 녀석이 “괜찮은데요!” 하면서 쿨하게 한마디 합니다. 머리를 감고 와서는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말릴 머리도 없는데요, 뭐. 얼마예요?”
원장이 말합니다.
“학생 그냥 가. 공부 열심히 하고.”
괜히 제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요즘 학생치고 머리를 밀고 공부할 만큼 당찬 녀석을 처음 보기도 했고, 그 쿨함에 또한 놀랐고 입시와 취업 전선의 어려움을 한순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는 분명 우리 동네에 서울대 수석 합격했다는 플래카드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정도 결의라면 분명 작심삼일은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원장님의 쿨함으로 머리 깎은 비용을 받지 않고 그냥 보낸 것 또한 우리 동네가 아파트값은 싸도 살 만한 동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좋은 동네에 살고 있음에 자부심을 갖게 한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중랑구 신내동입니다.
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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