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일기-나무, 90×55㎝, 캔버스에 아크릴, 2020
김진희, 일기-나무, 90×55㎝, 캔버스에 아크릴, 2020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올해만큼은 일기를 좀 더 잘 써보겠노라고 다짐하곤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다이어리를 들춰보면 시시콜콜한 사무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비록 하루하루가 그렇고 그런 나날이었다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들을 뒤돌아보면서 나의 자아가 한 마디 더 자란 것을 느낀다.

김진희의 화면은 그림으로 쓰는 일기다. 그의 그림은 동치미 같은 맛을 낸다. 뻔한 재료에서도 은근한 감칠맛이 나온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이 그에게는 시적인 다큐가 된다. 1인칭 서사인 삶의 풍경을 담담하면서도 어눌하게, 그러면서도 여운이 있는 따스한 감성으로 그리고 있다.

의욕이 불타다가도 막상 하얀 캔버스를 마주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영감을 붙잡아 심상 풍경으로 완성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거침없는 선묘는 이런 문제의 솔루션이다. 화려했던 날을 뒤로하고 묵묵하게 봄을 기다리는 나무를 바라본다. 깨달음의 환희일까, 핑크빛 여우 한 마리.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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