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 속도의 1000만배이상
어떤 암호체계도 무력화 가능
中 ‘양자암호 인공위성’ 발사
美 “양자컴에 국가 미래 달려”
韓, 선진국 기술 70~80% 수준
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에 등장하는 모순(矛盾)의 대결이 21세기 들어 미국과 중국의 첨단 과학기술 전쟁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암호든 뚫는 양자(量子, 퀀텀·quantum) 컴퓨터와 절대 뚫리지 않는 양자 암호통신의 경쟁이다. 양자 기술은 21세기 국가 경제·과학기술 경쟁력의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하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보다 이론상 최소 1000만 배 이상 빠른 미래의 컴퓨터다.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컴퓨터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양자 컴퓨터가 이르면 3년 내로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능가하는 ‘양자 우위’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디지털 컴퓨터는 0과 1의 2진법 비트(bit) 회로에 기초하고 있지만, 양자 컴퓨터는 0과 1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큐비트(qubit) 소자를 사용하므로 이론상 거의 무한대까지 연산 속도 증가가 가능하다. 양자 중첩(superposition) 현상을 이용해 큐비트 수를 늘리면 기하급수적으로 연산 능력이 증가하는 원리다. 미국 IBM사는 이미 선구적인 양자 컴퓨터 시제품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구글은 2029년 상업용 양자 컴퓨터를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양자 컴퓨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금 존재하는 전 세계의 어떤 암호체계든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계산능력 때문이다. 구글이 2019년 논문으로 공개한 큐비트 53개짜리 양자 컴퓨터는 슈퍼컴퓨터로 1만 년 이상 걸리는 연산을 200초 만에 해치웠다. 이런 속도라면 현대 암호의 기본으로, 매우 큰 소수(素數)를 소인수 분해하는 공개키 RSA 암호체계가 한 방에 뚫릴 처지에 놓인다. 특히,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화폐도 양자 컴퓨터로 보안이 허물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어떤 암호든 뚫는 무적의 창이 바로 양자 컴퓨터인 셈이다. 미국은 국가안보의 미래를 걸고 총력 개발에 나서고 있다. 불안정한 큐비트를 계산 단위로 이용하기 때문에 양자 컴퓨터는 현재 고진공과 절대영도(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에서만 작동하는 초전도형과 이온 덫(ion trap)형이 주된 시제품이다. 여러 가지 기술 형태 중 어떤 것이 유력해질지, 얼마나 빨리 대량생산이 가능할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이에 대해 양자 암호는 절대 뚫기 불가능한 무적의 방패다. 양자 암호통신에서는 양자 얽힘(entanglement) 현상이 응용된다. 해킹을 하려 한 곳의 양자를 손대면 다른 곳의 양자도 변해 즉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중간에서 가로챌 수 없는 암호통신이 된다. 양자 암호통신 기술은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현장 기술을 잇달아 선보인 바 있다. 지난 2016년 세계 최초의 양자 암호 인공위성 ‘무쯔(墨子)’를 발사해 2600㎞의 위성 네트워크를 완성한 데 이어,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2000㎞ 구간에 양자 암호통신 인프라를 깔아 가동 중이다. 게다가 중국은 양자 나침판(센서)과 양자 레이더까지 개발했다. 미국은 초비상에 돌입했다. 중국의 도전을 ‘제2의 스푸트니크 쇼크’로 받아들이고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를 개편해 양자 컴퓨터를 포함한 안보기술에 국력을 집중하는 배경이다.
미국과 중국의 ‘양자 전쟁(Quantum War)’ 속에 한국은 국가안보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우리 디지털 정보기술(IT)은 선진국의 97%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양자정보과학은 81.3%, 양자 컴퓨터는 71.8%밖에 안 된다. 정부는 지난해 4월에야 ‘양자기술 연구개발 투자전략’을 확정하고, 11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양자기술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다. 양자 기술의 경제·산업·안보적 활용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 민관 합동위원회다. 과학계는 현 정부를 넘어 차기 정부를 책임질 대권 후보들도 국가 경제산업 경쟁력 제고뿐 아니라 미래 국가안보의 핵심인 ‘양자 안보(quantum security)’ 정책 비전도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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