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영 기자의 베이스볼 스펙트럼
‘특급마무리 출신’ SSG 하재훈
“올 외야수로 20홈런 - 20도루
마지막엔 홈런왕 목표로 뛸 것”
LG 우익수 채은성은 1루수로
키움 타자 정재원, 투수로 전업
보직을 바꾸는 이유는 다양하다. 개인 성적이 부진하거나, 부상에 시달리거나, 팀 내 특정 포지션에 자원이 몰리게 되면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해 새로운 기회를 엿보게 된다. 흔치 않지만, 포지션을 바꿔 스타덤에 오른 사례도 여럿 있다.
하재훈은 데뷔 첫해인 2019년 61경기에 등판해 5승 3패 36세이브 3홀드(평균자책점 1.98)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구원왕이 됐다. 그러나 이후 어깨통증에 시달렸고, 2020년엔 15경기에서 1승 1패 4세이브(평균자책점 7.62), 지난해엔 18경기에서 1승 2홀드(평균자책점 4.00)에 그쳤다. 어깨통증 탓에 투구 부담감을 느낀 하재훈은 지난해엔 시즌 중이던 8월 일찌감치 등판을 포기했고 야수 전향을 결심했다.
하재훈은 마산 용마고를 졸업하고 2009년 시카고 컵스와 계약, 미국으로 떠났다. 마이너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외야수였다. 마이너리그에선 611경기에서 통산 타율 0.265와 38홈런, 288타점을 올렸고 일본프로야구에선 17경기에서 타율 0.262와 2타점을 남겼다.
하재훈에겐 롤모델이 있다. 1980년대 초반 고교야구 스타였던 박노준(안양대 총장). 박노준은 1986년 OB(두산)에 입단,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1988년까지 43경기에서 5승 7패(평균자책점 3.13)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고 야수로 보직을 바꿨다. 그리고 1989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100경기 가까이 출장했고 1994년엔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박노준은 1997년까지 통산 타율 0.262와 28홈런, 266타점을 올렸다. 1988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김응국은 투수로 2년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고 1989년 후반기부터 야수로 옮겨 2003년 은퇴할 때까지 15시즌 동안 1440경기에서 통산 타율 0.293과 86홈런, 666타점, 744득점을 챙겼다.
하재훈은 “부상이 야수 전향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라면서 “20홈런-20도루를 기록할 수 있는 외야수가 돼 올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고, 특히 최종 목표를 홈런왕으로 설정하겠다”고 말했다.
키움 정재원은 반대로 야수에서 투수로 거듭난다. 정재원은 2020년 2차 7라운드에서 외야수로 지명됐지만, 아직 1군 무대에 데뷔하지 못했다. 정재원은 서울고 1학년 때까지 투수였고 2학년 때 야수로 바꿨다. 당시 서울고에 정우영(LG), 주승우(키움) 등 투수자원이 꽉 차 마운드를 내려와 베이스를 지키기로 했지만, 미련이 남았다. 정재원은 “어릴 때부터 투수에 대한 열망이 컸고, 잘 풀리지 않아 야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다시 투수로 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해 성공한 사례는 적다. 후천적으로 어깨근육을 강화하기가 어렵기 때문. 야수였을 땐 많이 쓰지 않았던 어깨근육을 자주 활용하는 탓에 하재훈처럼 부상도 쉽게 찾아온다. 또한 변화구를 손에 익히고 제구력을 다듬는 데 시간이 걸린다.
LG 우익수였던 채은성은 1루수로 변신한다. LG는 김현수, 박해민, 홍창기 등 수준급 외야 자원이 즐비하다. 지난해 타율 0.276과 16홈런, 82타점을 올려 중심타선을 이끈 채은성은 팀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선택했다. 차명석 LG 단장은 “선수 본인이 포지션을 바꾸고 싶어 하고, 자신 있으니 도전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채은성은 3루수로 프로에 입문했고 포수, 1루수를 거쳐 2016년부터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다. 채은성은 데뷔시즌이던 2014년 1루수로 총 17경기에 출장했기에 1루수 출신이라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올 시즌엔 붙박이 1루수가 되기 위해 한겨울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