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영수의 Deep Read - 결산과 전망 ② 법치

공수처·소주성·부동산 사태 등 신념만 앞세운 後果 참혹… 적폐청산 내건 ‘다수의 폭정’으로 법치 뿌리째 흔들
대선 후보들, 사법 리스크 속 퍼주기에 편 가르기만… 법치 없이는 공정·정의 구현도, 민주주의도 불가능


민주와 법치는 ‘헌법 국가’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바퀴다. 어느 한쪽이 기울어지면 국가 전체가 좌초된다. 그런데 정부 수립 이후 민주화를 위한 노력에 비해 법치의 강화를 위한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무차별 통신조회 사태에서 보듯 대한민국은 지금 ‘법에 의한 지배’가 판을 치는 형국이다. ‘법의 지배’가 존중되고 적법절차가 지켜질 때 법치는 숨을 쉴 수 있다. 공정과 정의라는 시대정신 역시 정치 논리 아닌 법치를 통할 때에만 진정으로 발현될 수 있다.

◇법치와 민주라는 두 바퀴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지만, 법치주의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것으로 보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될 정도로 법에 대한 불신은 크며, 법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은 듯하다. 법치보다 덕치를 앞세웠던 유교의 영향, 법이 강자의 도구로 전락했던 일제강점기와 독재 시절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서구 민주국가에서 민주와 법치를 동등하게 평가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법치 없는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빠지고, 결국 공정과 정의를 깨뜨린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역 갈등, 진영 갈등, 빈부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법치를 무시하고 ‘다수의 지배’를 앞세울 경우, 알렉시 드 토크빌의 지적처럼 ‘다수의 폭정’으로 민주주의가 몰락할 위험도 매우 크다.

공정과 정의는 무조건 다수의 편에 있는 것도, 그렇다고 무조건 소수의 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된, 예컨대 ‘보편적 인권’을 비롯해 국민주권·대의제·복수정당제·권력분립·사법부 독립 등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적 요소들도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타협을 통해 그때그때 시대적 합의를 형성해야 할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입법절차에 의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조정하는 것, 사법절차에 의해 소송당사자의 정당한 권리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 등이 그런 경우다.

입법절차와 사법절차에 의해 ‘잠정적 정의’를 실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된다. 수백 년의 역사를 통해 법의 지배, 적법절차, 법치국가의 전통을 만들면서 민주주의와 더불어 법치주의도 발전했다.

◇문 정권의 법치 몰각

문재인 정부 5년, 공정과 정의가 강화됐을까.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균등, 절차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강조했다. 과연 그렇게 됐을까. 대다수 국민은 공정과 정의가 오히려 후퇴했다고 느낄 것으로 관측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인천국제공항 사태, 부동산정책 등이 몰고 온 후과(後果)를 평가해 보면 그 이유가 뚜렷해진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전문성과 상식을 무시하고 이념적 소신으로 밀어붙인 끝에 실패한 사례다. 인천국제공항사태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명분을 강조했지만, 정작 정규직 근로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수많은 사람을 좌절시킨 케이스다. 부동산임대차 3법을 통한 부동산정책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인의 부담을 더 높였지만, 그 반작용으로 전세 대란이 일어나고 결국 임차인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임대인과 임차인을 공정하게 대하기보다 무조건 임차인 편에 서려던 어설픈 이념 편향이 낳은 필연적 정책 실패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례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건 정부·여당의 정책 결정 및 국정 운영이 자기식의 공정, 자기 생각에 따른 정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공정,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젖은 정의가 진정한 공정과 정의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의혹은 한결같이 적법절차를 무시한 문 정권의 법치 훼손 사례들이다.

◇사법 편향과 입법 폭주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힘을 실었고, 이를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추진하면서 가뜩이나 대한민국의 튼튼하지 못한 법치를 뿌리째 흔들었다.

양승태 체제의 사법부를 무너뜨린 후 들어선 김명수 체제의 사법부는 더욱 정권에 굴종했다. 검찰개혁 구호 속에 탄생한 공수처는 역량을 의심받는 상황을 넘어 최근엔 언론·정치·민간사찰로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 정치를 통한 공정과 정의가 아니라, 법치를 통한 공정과 정의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치적 주관이 아닌, 법치의 객관에 따라 공정과 정의를 밝히고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때 남미 베네수엘라를 민주주의의 모델로 강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으로 허덕이다 몰락했다. ‘다수의 요구’를 앞세워 ‘제 살 깎아 먹기’식 분배를 계속하는 것은 지속가능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없고,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키워낼 수 없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사법의 정치적 편향성은 법치의 적이다.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이 사법부의 독립을 흔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여당은 또 압도적 다수 의석을 앞세워 입법 폭주를 계속했다. 이렇게 되면 입법절차를 통한 공정과 정의가 불투명해진다. 여야의 대화와 타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여당이 무조건 대통령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공화당이 때로 야당과 협력해 대통령을 견제했듯, 사안에 따라 견제도 해야 한다. 법치의 정착과 발전은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무엇보다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하는 법치의 근간이 튼튼해야 한다.

◇국민의 길

올 한 해도 법치의 발전을 낙관할 수는 없다.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선 후보들이 퍼주기 공약을 일삼고 이전투구식 편 가르기 싸움을 벌이는 현실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법치주의의 정착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건 주권자인 국민의 인식 변화다. 국민이 법치를 경시할수록 법치가 약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제는 국민이 앞장서 법치를 지키고 강화해야 한다. 법치 없는 공정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는 공염불임을 분명히 인식할 때 법치의 미래를 비로소 꿈꿀 수 있다.

헌법학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법치와 민주의 두 바퀴 : 법치 없는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빠지고, 공정과 정의를 깨뜨림. 민주와 법치는 헌법국가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바퀴.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 적법절차, 법치국가의 전통과 함께 발전해옴.

문 정권의 법치 몰각 : 공수처 무차별 통신조회 사태에서 보듯 대한민국은 지금 ‘법의 지배’ 아닌 ‘법에 의한 지배’가 판을 치는 형국.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기회의 균등, 절차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심각하게 훼손됨.

사법 편향과 입법 폭주 : 적폐청산 이름으로 추진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후과도 참혹. 사법의 정치 편향과 여당의 입법 폭주만 계속. 대선 후보들의 퍼주기와 편 가르기 싸움으로 법치의 앞날도 걱정되는 현실.


■ 용어 설명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영국에서 발전한 법치주의의 원형. ‘법에 의한 지배’와는 구분됨. 왕의 명령보다 보통법재판소(법원)의 판결을 우선함으로써 권력의 오남용에 통제를 가한 것이 효시.

‘적법 절차(due process of law)’는 미 연방헌법 수정 제5조와 제14조에 규정된 것으로 법치주의의 근간.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적 절차의 중요성에 실체적 정의 구현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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