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있지(ITZY) ‘#트웬티’

정보의 바다에서는 낚는 숫자만큼 낚이는 일도 흔하다. “나만 믿고 따라와.” 어부의 꽁무니만 넋 놓고 따라다니다간 아찔한 사이 그물에 걸리는 신세가 된다. 연말연시에 내가 ‘낚인’ CCTV 영상 중에는 ‘카페에서 춤을 추다가 들킨 아르바이트생’도 있다. 기승전결은 이렇다. ①카페 영업이 끝난 뒤 이어폰을 끼고 청소를 한다. ②음악에 심취해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춘다. ③손님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 ④이를 알아채고 무안한 알바생을 향해… (뭐든 끝이 중요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항의했다면 이건 사건이다. 다행히 해피 엔딩. 영상 속 손님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박수를 쳐준다.

‘현실일까 꿈일까 사실일까 아닐까’(남진 ‘둥지’ 중). 아쉽게도 이건 보안업체와 유튜버가 짜고(?) 찍은 페이크 다큐였다. 하지만 실망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반응(‘비록 마케팅콘텐츠라도 신박하고 재미있다’ 등)이 다수였고 ‘카페에 출몰한 있지 빌런’이란 입소문이 나면서 조회 수도 수천만 건에 육박했다. 도대체 ‘있지 빌런’이 뭐길래.

악당(惡黨)이란 뜻의 빌런(villain)은 최근에 기인이나 괴짜를 가리키는 말로 영역을 넓혔다. 그럼 있지는? ‘너희가 원하는 거 전부 있지? 있지!’라고 주문을 외며 탄생한 5인조 그룹 이름이다. 멤버 모두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여성들인데 아르바이트생이 춤추던 바로 그 음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어른 흉내 페이크 딱히 안 할래/ 나는 서툰 지금 내가 좋아 (중략) 난 있지 용감해/ 몰라서 더 거침없이’(‘#트웬티’ 중).

작년에 음악동네를 출렁이게 만든 진원지 중 하나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였다. 2021 MAMA(엠넷아시안뮤직어워즈) 무대에서 이효리와 8개 크루가 함께 펼친 퍼포먼스 역시 주제는 ‘두 더 댄스’였다. ‘어차피 너는 나를 잘 몰라/ 인형 같대 마네킹 같대/ Oh my god/ Who told you that/ 그건 절대 나는 반대/ 우린 살아 움직여’.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춤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존재임을 상기시켜주는 예술이다. 그러니 누가 춤을 막을 수 있는가. 춤을 못 추게 한다는 건 인간의 기본권을 빼앗는 행위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저자 김진송)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1월에 나온 잡지(삼천리)에 실린 제목인데 거기에도 이런 탄원이 적혀 있었다. “댄스를 한갓 유한계급의 오락이요 또한 사회를 부란시키는 세기말적 악취미라고 보십니까.”

음악동네엔 미동도 않고 조용히 서서 노래하는 가수가 있는가 하면 전주가 나오자마자 몸부터 흔드는 가수도 있다. 1979년에 버글스(The Buggles)가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여전히 오디오형 가수와 비주얼 가수는 사이좋게 공존 중이다. 세계가 주목한 K-팝의 요소엔 한국인의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춤의 활력이 포함돼 있다. 조용히 서서 노래만 부르는 방탄소년단을 상상할 수 있는가.

있지 빌런을 소개한 매체마다 등장한 ‘무아지경’이라는 단어는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에도 나온다. “아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황홀경이 그 여자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두 사람의 놀이는 거의 무아지경이었다.” 비록 연출된 장면이긴 해도 아르바이트생의 댄스는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해방 욕구를 드러냈다. 그는 매장 한복판에서 대걸레를 거칠게 내던지고 걸그룹 있지의 춤을 춘다. 갓 스무 살의 근육은 사람의 팔과 새의 날개가 원래는 같았다고(상동기관) 선포하는 듯하다. ‘앞자리 숫자가 바뀐 것뿐인데/ Do it do it/ More more more (중략) 책임은 무겁지만 자유는 달콤해’(‘#트웬티’ 중).

춤을 춘다는 건 꿈을 꾼다는 것 아닐까. 무아의 경지에서 춤추는 젊은이에게 다가가 물으면 실례겠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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