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에 軍집결 긴장고조 속 ‘美와 대립’ 속내는?
푸틴, 나토 東進 저지하고 동유럽 국가 영향력 확대 ‘야심’
美와 제네바 협상서 냉전 시발점 된 ‘얄타회담 재연’ 노려
NYT “옛 소련 영광 되찾고 새로운 국제질서 주도가 목적”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4일, 러시아의 흑해 휴양지 얄타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모였다. 연합국의 승리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이들은 같은 달 4일부터 11일까지 각각 다른 희망과 계산으로 전후 세계 질서에 대해 논의했다. 독일의 동서 분할과 폴란드 동부의 소련 병합, 그리고 한국의 운명도 여기서 결정됐다. 그 유명한 ‘얄타회담’이다. 77년이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사태 해법을 위해 마침내 머리를 맞댄 미국과 러시아의 ‘제네바 회담’을 두고 ‘얄타회담 2.0’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서 냉전의 시발점이었던 얄타회담이 다시 회자되면서 이번 미·러 회담이 동서 간 신(新)냉전의 시작이 될지 주목된다.
◇“푸틴, 얄타회담 2.0으로 ‘세력권’ 통제 원해” = 미국과 러시아가 10일 제네바 협상장에 앉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하기 위한 것으로, 정확히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집결하면서 ‘침공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미·러 양자회담 이후에도 분위기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최대 쟁점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을 막으려 하고 미국은 그런 약속은 불가능하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까.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던 전례를 보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우크라이나가 ‘인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영국의 러시아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는 “전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플랜 A도, B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군사적 침략의 선택권을 자기 자신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일종의 ‘얄타회담 2.0’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제임스 길모어 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주재 미국 대사도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얄타회담을 소집해 냉전 당시 최악의 때처럼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을 다시 세우려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나토 확장 중단을 약속해달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나토는 더 이상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폴란드 등에서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건국의 뿌리 같은 곳이다. 러시아의 기원은 키예프 공국으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의 뿌리와 같다. 키예프가 1240년 몽골제국의 침입을 피해 동북부로 이주해 건설한 곳이 모스크바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의미다. 러시아와 맞닿아 있는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구소련 국가들과 맞닿아 있다.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을 잇는 위치로, 러시아의 영토가 우크라이나까지 확장되면 동유럽을 거쳐 중유럽·서유럽 국가들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세계적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CEO인 조지 프리드먼은 ‘21세기 지정학과 미국의 패권전략’ 저서에서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벨라루스와 러시아가 연합하고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추가되면 러시아는 옛 소련 위성국이었던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국경에 도달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제국이 다시 등장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안보 관점에서도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핵심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는 일각일 뿐…“드라마는 이제 시작” = 최근 몇 년간 푸틴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고 야당을 탄압해 1인 지배 전통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런 그가 지난해 7월 장문의 연설문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적 동질성을 주장하고 소련 붕괴 당시 자신도 밤새 택시를 운전해 생계를 꾸려야 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푸틴의 최종 목표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제 러시아가 더 이상 미국과 서방을 ‘화나게’ 하는 게 목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 차원을 뛰어넘어 소련의 옛 명성을 되찾고 새로운 국제 질서를 ‘이끌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릴리야 ?초바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푸틴 대통령이 서스펜스(suspense) 게임을 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푸틴 대통령의 장기적 계획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지배를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넘쳐나는 천연자원과 국방력은 큰 힘이다. 여기에 소련 제국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남아 있는 국민의 지지도 있다.
러시아의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32%는 러시아가 다른 나라들이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강대국이 되길 원한다고 답했고 전쟁으로 푸틴 대통령의 권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답한 사람도 16%에 달했다.
캘리포니아대 정치경제학 교수 출신인 어툴 싱 ‘페어 옵서버’ 대표는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서 러시아의 분노와 러시아 정교회의 정체성 등을 총망라한 푸틴 대통령이 미국 주도 서방에 대항해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도전을 본격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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