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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가지 사건으로 보는 투기의 세계사 | 토르스텐 데닌 지음, 이미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라슬로 한예츠가 피자 두 판을 샀다. 가상화폐 최초의 실물 구매 사례로 남은 이 거래에서 한예츠가 지불한 돈은 1만 비트코인으로, 비트코인 1개당 0.003달러꼴이었다. 13일 현재 1비트코인 가격은 4만3000달러 선. 사상 최고가였던 지난해 11월 6만9000달러 수준에서 30% 이상 빠졌지만, 한예츠가 샀던 피자를 700만 판 넘게 살 수 있는 돈이다. 이는 비트코인이 세상을 바꿀 신기술이라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했는데도 여전히 ‘탐욕’과 ‘거품 붕괴 공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보여준다.

새 책 ‘42가지 사건으로 보는 투기의 세계사’(원제 From tulips to bitcoins)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부터 21세기 비트코인 열풍에 이르기까지 400년간 주요 상품 시장에서 벌어진 투기 사건을 되짚었다. 책에 따르면, 상품을 투자가 아닌 투기의 대상에 올려놓은 상품 선물 거래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 수메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인들은 염소 같은 동물을 인도할 수량·날짜·시간을 적은 점토 증표로 선물 계약을 맺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리브 인도권이, 고대 로마에서는 밀이 선물 거래 형식으로 거래됐다.

자본이 축적되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거품의 차원이 달라졌다.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은 꽃을 넘어 땅속 구근에까지 미처 1634년부터 3년 동안 튤립 가격이 50배 올랐다. 튤립 구근 세 개로 암스테르담 집 한 채를 살 만한 수준에 이른 거품은 1637년 2월 5일 정점을 찍고 불과 이틀 뒤 완전한 붕괴로 이어졌다.

21세기 들어 거품은 또 한 번의 차원 변화를 보인다. 다우존스 AIG 상품지수 등 20세기 말 등장한 상품지수가 대중들을 상품 투자의 세계로 이끈 데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 경제의 급성장, 정보기술(IT) 혁명과 4차 산업혁명, 지구온난화에 따른 잦은 기상 이변 등이 겹쳤다. 이제 원유나 쌀, 밀, 금뿐 아니라 희토류, 어류, 설탕, 코코아, 오렌지주스, 면화, 비트코인 등 과거에 상상할 수 없던 부문에도 거품이 나타난다. 거품이 꼈다 빠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거품의 규모는 갈수록 커진다. 15년간 자산운용회사에서 일한 저자는 책에 나오는 극단적 사례들을 통해 투자자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본 시장의 건망증”을 이해하기를 기대한다.

“자신이 발을 담근 상태에서는 버블을 포착할 수도, 버블이 터지는 시기를 알아차릴 수도 없다. 이런 일은 과거를 되돌아볼 때만 가능하다.” 360쪽, 1만7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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