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기름은 기름이 아니다. 이 말을 분석해 보면 엿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기름일 듯하지만 엿기름은 기름과는 관련이 없다. 조상들은 이유가 있어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겠지만 썩 잘 지은 이름은 아니다. 엿기름은 한자어로는 ‘맥아(麥芽)’라고 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보리싹’이라고 했으면 훨씬 알아듣기 쉬웠을 것이다. 그래도 잘 못 알아듣는 이가 있다면 스카치위스키의 주재료인 몰트(malt)가 바로 엿기름이라고 똥겨 주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싹을 틔운 보리를 굳이 엿기름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엿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엿의 단맛을 내려면 곡물의 녹말 성분을 당분으로 바꿔야 하는데 보리의 싹을 틔우면 효소가 생겨 이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단맛의 대명사인 엿은 물론 식혜를 만들 때도 엿기름은 꼭 필요하다. 엿기름과 밥알을 섞어 뭉근한 온도에서 삭힌 것이 식혜다. 이것을 자루에 넣어 단물을 짜낸 뒤 오랜 시간 고아 낸 것이 엿이니 엿과 식혜는 본래 한 뿌리다.

엿을 만드는 데 보리의 싹이 필요하니 보리 싹을 틔운 후 그 싹을 적당한 길이가 되도록 길러내야 한다. 엿기름이란 말을 만든 이는 엿을 만드는 데 필요한 보리를 기르는 과정을 뭉뚱그려 이리도 불친절한 말을 만든 것이다. 방언을 뒤져 보면 ‘엿길굼, 엿질굼’ 등이 엿보이니 보리의 싹을 기르는 것에 어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엿기름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오묘한 이치와 함께 기성세대의 의무를 함께 느낀다. 보리 알갱이는 그런 효능이 없지만 싹이 트면 효소가 생기고 그 싹이 식혜를 만들고 엿을 만든다. 아무리 역량이 잠재돼 있어도 싹을 틔워 줘야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청년세대는 사회가 공정하지 않고 기성세대가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귀가 있다면 새겨들을 일이다. 저들이 싹을 틔워야 세상이 변할 텐데 그 싹마저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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