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신년 인터뷰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신년 인터뷰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3·9 대선 시대 정신을 묻다 - ④ 진념 前 부총리

표 좇는 ‘정치꾼’만 설치고, 미래 고민하는 ‘정치가’는 안 보여
연금개혁 등 시대과제 외면한 채, 탈모 지원 등 말초적 표얻기뿐
재정준칙 통과 안 시킨 국회 무책임… 세금을 자기 쌈짓돈 여겨

글로벌 공급망·팬데믹 위기 상존… 향후 10년에 한국 미래 달려
BTS 등 ‘뛰노는 장’ 만드는 게 정부 역할… 기업도 기 살려줘야


인터뷰 = 조해동 경제부 부장

‘3·9 대통령선거’를 지켜보는 진념(81)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안타까움, 우려 등이 동시에 묻어났다. 우리나라가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1962년 이후 개발연대 출범 이후 60주년,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5주년이 되는 중요한 시기에 치러지는 대선에 대해 “이번 대선처럼 나라와 국민의 품격을 떨어뜨린 대선은 없었다”고 질타했다. 그는 “표만 좇는 정치꾼들이 설치고,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설계하는 경륜을 가진 정치가는 보이지 않는다”며 “앞으로 1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시기인데,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시대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내내 안타까워했다.

―20대 대선이 시대의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대선처럼 이전투구(泥田鬪狗)인 선거는 본 적이 없다. 가정 문제부터 오만가지 범죄와 관련이 있네, 없네 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와 국민의 품격을 이렇게까지 떨어뜨린 선거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대선 때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가.

“올해가 우리나라 개발연대 출범 이후 60년이 되는 해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시작한 지 60년이 흘렀다. 내가 1963년 옛 경제기획원(EPB)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제개발 계획을 담당했다. 그때부터 25년 정도는 산업화가 시대의 화두였다. 그 뒤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1987년 이른바 ‘민주화 선언’ 이후 정치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선진국 경제에 진입했다. 오늘날 세계 7∼8위의 무역대국이 됐다.

산업별로 보면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산업의 선진국 대열에 들었고, 그 뒤 정보기술(IT), 디지털 등으로 발전을 이어왔다. 우리나라는 세계 개발도상국 중에서 가장 성공한 ‘모범 사례(모델 케이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한강의 기적’도 외국에서는 모두 인정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지에 참배하면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주소다.”

―한국이 직면한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개발연대 출범 60년, 정치 민주화 35년을 맞아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1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현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펴낸 ‘문재인 정부 경제 분야 36대 성과’(2021년 12월)라는 책자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모범 국가의 전형인 것처럼 서술돼 있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대외적으로 글로벌 경제는 이미 저(低)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거기다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팬데믹 파장은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설사 오미크론 변이 팬데믹이 정리된다고 해도 또 다른 팬데믹 위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간 날로 치열해지는 패권 경쟁은 향후 양국의 무역, 기술, 안보 경쟁이 더욱 격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번 요소수 사태에서 발현된 것처럼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한국이 앞으로 10년간 직면할 현실이다. 한 군데서 삐끗하면 전체 시스템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엄중한 시기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경제적으로 보면 대내적으로는 경제 활력이 크게 저하돼 현 추세가 이어지면 잠재성장률(물가상승을 초래하지 않는 최대 성장률)이 앞으로 10년간은 2%에 머물고, 그 뒤에는 1%대로 추락할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과 초고속 노령화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짓누르고 있다. 거기다 국내에서 기업이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매우 비중이 큰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0만 개 이상의 중소·자영업자가 문을 닫았다.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고인 37만 개의 일자리를 늘렸다고 하는데, 그중 90% 가까이가 노인 일자리다.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계층 간·세대 간 갈등은 정치꾼들의 정쟁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통합’과 ‘동행’이 중요하다. 약자와의 동행을 통해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과거에 매몰되지 말고 과거를 넘어 미래를 설계하고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것에 시대정신의 중심을 두고 고민해나가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요즘 ‘세계 5대 국가가 된다’는 얘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초기 수준에서 5년째 헤매고 있다. 2017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1600달러였는데, 지난해에도 3만5000달러 수준이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중진국 내지 선진국 진입 과정에서 일종의 ‘정체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이런 현상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담대한 전환이 필요한지 좀 더 심도 있게 고민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서는 이런 시대적 과제에 대한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설령 목표가 있다고 해도 추상적 목표만 있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찾기 어렵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어려운 과제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달콤한 얘기만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백화점식·나열식 표 모으기, 말초적 표 얻기만 하고 있다. 탈모 공약, 군 병사 월급으로 100만 원을 준다, 200만 원을 준다, 출산장려금으로 얼마를 준다 하면서 말초적인 정쟁만 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정부가,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보면, 여·야 할 것 없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과 과신에 빠져 있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모든 것이 된다는 착각이다. 대통령이 대기업 대표를 모아놓고 그동안 기업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청년 일자리를 이만큼 만들어내시오’라고 지시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정부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시장은 시장대로 할 일이 있고,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정부가 개입해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서 정부가 지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

탈모, 임플란트, 골프장 그린피, 임차인 지원 얘기나 기본소득을 포함한 기본 시리즈, 비정규직 급여 인상 문제 등이 모두 정부와 시장과의 관계를 잘못 인식해서 나온 얘기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성이 ‘비정규직 제로화 시대’ 선언이었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했다. 그런데 성적표가 어떻게 나왔나. 비정규직은 더 늘어났고, 제대로 된 일자리는 얻기 더 힘들어졌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시장 경제는 기본적으로 야성(野性)을 갖는다. 야성이 없으면 안 된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기술과 시장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호랑이나 표범처럼 야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은 시장 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즉 어려운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원을 늘려 약자와 동행하는 정책, 성장과 복지를 조화시키는 정책, 시장의 게임의 규칙(rule)을 감시하고 바로 잡는 것, 이를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뛸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BTS나 K-드라마가 정부가 나섰기 때문에 성공했나. BTS가 지역·학벌 이런 거 따지나. 끼 많고 모험심 많은 젊은이가 뛰놀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정 금액 이상 수출하는 기업인에게는 출입국 절차에서 우대해줬다. 수출하고, 일자리 만드는 기업에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격려해주고 해야 하는데 이런 게 언제부턴가 달라졌다.”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오해는 여·야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다.

“참 답답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서 2000년부터 집행이 시작됐다. 과거에는 정부가 어려운 사람에게 시혜하는 것처럼 돼 있던 걸 국민의 기본권, 수급권으로 바꿔서 만들었다. 제도는 잘 돼 있는데, 다만 운영 과정에서 일부 미비점이 있다면 그건 개선하면 된다. 국민기초생활이라는 게 기본소득 아닌가. 그게 잘못됐으면 대상을 확대하고, 지원 수준을 높이고, 복지 전달 체계를 점검하면 되지 갑자기 기본소득을 내세워서 모든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성장과 복지는 같이 가야 한다. 성장 없는 복지는 허구고, 복지 없는 성장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강조해야 하는 것은 ‘자구노력(自救努力)’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분들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경제학에서도 검증된 적이 없는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전 국민에게 지원하겠다는 것은 자주 능력을 죽이고, 경제 운영의 활력을 없애는 것이다.

예컨대 군 장병 월급을 200만 원 주자는 주장은 우리가 모병제로 전환하면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모병제로 갈 상황은 아니다. 만약 군 장병 월급을 200만 원 줘서, 군 장병이 제대할 때 예컨대 3600만 원의 저축을 들고나온다고 가정해보자. 그 방법이 과연 좋을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지금 지방대에 학생이 부족한 곳이 많은데, 그곳에서 현재 일손이 부족한 정보기술(IT) 분야 등의 기술 인력을 집중적으로 훈련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예컨대 부동산 정책을 보자. (문재인 정부가) 27번, 28번 부동산 대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두더지 게임’ 식이다. 올라오면 때리고, 또 올라오면 때리고, 부동산 가격은 올라가고 세금은 많이 내야 하는데, 노인이나 소득 없는 사람들은 ‘우리가 집값 올려달라고 했느냐’고 항변한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뒤죽박죽으로 혼동한 거다. 규칙을 정하고, 감독을 하고, 환경을 조성해야 할 사람이 직접 선수로 뛰면 게임이 될 수가 없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어려운 문제는 회피하는 것 같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골치 아픈 얘기는 언급 자체를 안 한다. 예컨대 연금개혁 얘기를 표를 잃을까 봐 안 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모든 것을 국가가 해준다고 한다. 그게 후보 개인 돈으로 해주는 게 아니고, 국민 세금으로 하는 건데 재원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근본적으로 시장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하든, 금융융자 지원을 하든 그런 건 괜찮은데, 지금 대선 후보들이 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주겠다는 얘기밖에 없다.

대선 후보들이 과연 재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화당 인사들도 장관으로 임명했다. 당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자리, 즉 옛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원, 청와대 경제수석 같은 자리에는 대선 캠프 사람을 일절 쓰지 않았다. 재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각종 공약을 내놓고 있는데, 공약 집행은 후보 개인 돈이 아니라 다 국민 세금으로 하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인데 정치꾼들이 주인행세를 하면서 국민 세금을 자기 호주머니 돈처럼 생각하고 있다.”

정리=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관련기사

조해동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