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조용필 ‘너의 빈자리’
“죄송한데 여기 자리 맞으세요?” 극장이나 열차 안에서 나올 만한 질문이 만약 무대나 관공서에서 오간다면 어떨까. 감정이 격해지고 언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당신 같은 사람이 차지해” “내가 이 자리까지 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당신이 알아”.
나는 맞는다고 우기는데 남은 맞지 않는다고 여기면 자리가 흔들린다. 송골매 음반(1987)에도 ‘자리’ 다툼을 소재로 삼은 노래가 들어있다. ‘서울 달빛 아래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가 자리보곤 가랑이 넷이어라’. 출전은 신라시대 19금(?) 향가(처용가)인데 부제는 ‘처용의 슬픔’이다. 내 집에 들어갔는데 엉뚱한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슬프기보다 무서울 것이다. 무력을 행사하거나 고함부터 질러야 할 텐데 처용은 다르다. 이 상황을 시의에 맞게 비유적으로 해석하면 자리에 침투한 건 오미크론 같은 바이러스고 처용이 부른 노래는 일종의 백신일 터이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가 실린 7집 음반의 타이틀 곡은 ‘인생이란 이름의 열차’다. 그 속에 들어있는 처방전도 유효적절하다. ‘시간 흐르고 세월 지나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네’.
오늘 음악동네의 핵심어를 ‘자리’로 정한 건 순전히 배우 오영수(1944년생) 덕분이다. ‘깐부 할아버지’가 ‘깐부치킨’ 모델제의를 사절한 이유가 신선하다. 배우로서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그 말은 예술가, 나아가 인간에게 ‘자리란 무엇인가’를 묵상하도록 유도한 발언이다. 여든 가까운 나이에 한국 배우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연기상을 받은 그에게 따라다니는 부사어는 두 가지다. (그 자리에서) 꾸준히, (이 자리까지) 묵묵히.
음악동네엔 유독 빈자리가 많다. ‘너와 나 만나던 진실 속에서 세월은 가고’(조용필 ‘너의 빈자리’ 중) ‘구름도 바람도 꽃 피듯이 오겠지만/ 다시 메울 수 없는 내 맘의 빈자리여’(윤정하 ‘빈자리’ 중) ‘다시 채워질 수 없기에/ 슬픈 이별도 하지 못하고’(이상우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중) ‘니가 없는 자리는 투명한 꿈처럼/ 허전한 듯 나를 감싸고’(나얼 ‘기억의 빈자리’ 중).
경륜의 배우답게 이런 말도 했다. “산속에 꽃이 있으면 젊을 때는 꺾어 가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그냥 놓고 온다.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과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 그게 쉽지는 않다.” 두 편의 시가 조명을 받고 소품처럼 피어난다. ‘세월은 꽃 핀 자리보다 진자리가 길다’(배경희 시조 ‘꽃 진 자리’중)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구상의 시 ‘꽃자리’ 중).
조용필의 ‘너의 빈자리’는 후에 제목이 ‘어디로 갔나요’로 바뀌었다. 마치 ‘오징어게임’의 유행어가 ‘이러다간 다 죽어’라는 걸 일깨워주는 듯하다. 꿈을 잃고 길을 잃고 자리마저 위태로운 사람들에겐 열심만큼 초심이 중요하다. ‘꿈이 아니기를 나는 기도해 봐요/ 내 마음이 자꾸 (중략) 욕심을 내라며 바보 같은 말을 하네요’(이보람(씨야) ‘처음 그 자리에’ 중). 작가·
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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