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 열흘 앞두고 초비상
설연휴까지 공사 중단 러시
최고안전책임자 신설 불구
법조항 모호해 CEO도 대상
‘기업 길들이기’악용 우려도


대형 건설사인 A 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오는 27일부터 설(2월 1일) 연휴가 포함된 2월 6일까지 모든 사업장의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안전관리 인력이 부족한 설 연휴 즈음에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A 사처럼 중대재해법 시행일부터 최대 열흘가량 휴무에 들어가는 건설사가 적지 않다”며 “작업을 중단하는 초강수를 두더라도 ‘1호 처벌’만은 피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광주 서구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로 법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을 상황”이라면서 “일단 1호가 되는 건 피하자는 분위기가 산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고 전했다.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법이 본격 시행되지만 혼란이 해소되기는커녕 광주 붕괴사고까지 가세해 초비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철강·석유화학·조선업 등 중후장대 기업들을 위주로 중대재해법에 명시된 규정대로 안전관리조직과 책임자를 마련하고, 안전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등 긴급대응에 나섰지만, 처벌 공포와 불안 심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 고의와 과실 기준 등에 대한 법 규정이 여전히 모호해 결과적으로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신설했지만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CSO가 있어도 CEO 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다. 중대재해법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악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법 조항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처벌 대상이 CSO나 CEO가 될지 아니면 사업주(오너)가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다”며 “정치권의 ‘기업 길들이기’ 수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고 했다. 재계에서는 법 제정 이후 첫 시행인 만큼 판례가 나오기까지 수년간 법 해석과 적용을 놓고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책임자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종사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항도 논란거리다. 예컨대 조선소나 제철소 등 수만 명이 근무하는 대형 사업장의 경우 천재지변의 사고나 근로자 과실에 의한 사고까지 경영책임자가 직접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경영책임자는 안전보건 확보를 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법이 하나의 절충안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모호해졌다”며 “법 시행 과정을 거치면서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등 법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황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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